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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dew Apr 04. 2022

캠퍼스 타운에서 집 구하기

돈 냄새 한 번 잘못 풍겼다가

어설프게 안다는 건 때로 일을 그르치는 가장 큰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 돌아온 지 햇수로 8년이 넘었으니 강산이 바뀔 때도 되어가지만 우리 부부는 각자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 혼자 살며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파는 등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한 또래들에 비래 생활 수완이 있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변화가 더딘 나라다. 그런 이유로 초기 정착 관련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문제를 어디서 처리해야 할지는 대부분 닥쳐 해결할 일이라 미리 현지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충’ 안다는 것에서부터 모든 일은 꼬여버렸다.


미국에서는 체류 문제가 확실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와서 준비할 수 있도록 I-20(학교에서 발급하는 체류 증명서)가 유효한 가장 빠른 날짜에 출국했다.(수업 시작 일정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관리자들의 업무일을 기준으로, 개학으로 보는 8월 중순인 날로부터 30일 전) 도착 다음 날 은행에 가서 계좌를 열고 그 길로 딜러에 가서 미리 봐 둔 몇 종의 차량을 직접 보고 계약한 후,  신차가 나오는 날까지 렌터카 기간을 연장하며 집을 구하러 다닐 계획이었다. 사실 계획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돌발 변수에 의해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https://brunch.co.kr/@sandew/65) 정착기 돌발 변수 중, 집 구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캠퍼스 타운에서 렌트할 집을 구하는 일은 사실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라떼 잠시 등판)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아파트들이 홈페이지를 갖추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주로 부동산을 통해 정보를 받거나 직접 발품을 팔아 렌탈 오피스를 찾아가서 필요한 기간에 맞춰 나오는 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한 아파트는 거의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집을 둘러보고 입주 날짜에 맞춰 고른 후, 출국 전에 인터넷으로 계약금을 보내 놓고 도착해서 바로 키를 받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캠퍼스 타운의 아파트는 보통 아파트/콘도(타운하우스)/싱글 하우스로 구분할 수 있다. 단, 한국처럼 주거 형태에 따라 아파트, 주택, 빌라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것은 렌트 계약에 따른 구분이라고 보는 편이 쉬울 듯하다. 몇몇 대도시의 도심을 제외한 미국의 중소 도시들의 주거 형태는 대부분 3층을 넘지 않는 콘도 혹은 타운하우스(몇몇 집이 메인 현관을 공유하는 연립주택 형태?)가 대부분이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집 중에는 한국의 아파트 같은 집들도 있지만 겉보기에는 단층에 그냥 집 같구먼 저게 왜 아파트지 싶은 집들이 있다. 해서, 정리하자면 미국의 아파트는 단지 내 개별 unit를 한 회사가 소유하고 있어 렌탈 오피스를 통해 각각의 unit과 계약을 맺는 형태라고 보면  되겠다. 콘도는 생김새와 상관없이 unit마다 다른 개별 소유주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니 렌탈 계약 또한 오피스가 아닌 개별 주인과 맺게 된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떤 단지는 아파트라고 부르고 어떤 단지는 콘도라도 부른다면 이처럼 렌탈 방식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싱글 하우는 말 그대로 싱글 하우스, 주인이 있는 공유하지 않는 사유지를 갖는 하우스를 말한다. 캠퍼스 타운에서 싱글 하우스를 렌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략적인 설명일 뿐 각각의 예외 사항이 있으니 더 궁금하신 분은 언제든 개별 질문 환영합니다.


혼자 몸이었으면 거리 가깝고 학생들 많은 캠퍼스 주변 아파트를 구하면 될 일이었지만 우리 같은 대학원 가정은 아이와 함께 세 식구가 앞으로 2년을 머물 집이니 동네를 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리스트만 받아둔 상태였다. 미국에서 집 구할 때 가장 무난한 방법은 한인 밀집 지역을 찾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학군을 중요시하고 백인 위주의 타운이나 우범지대 인근 지역은 알아서 피해 가격 대비 가장 리저너블한 지역을 고르기 때문에 한인 교회 찾아가 보통 어디들 사시는지 물어보면 한 두 군데 나오는데 그 지역이  평균 80점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영영 살 집’을 ‘사는’ 게 아니고, ‘머무를 집’을 ‘빌리’는 과정임)


최소 1-2개월 전에 통보해야그러나 우리가 간과했던 건 시기였다. 캠퍼스 타운의 집은 대부분 3-4월에 마켓에 공급이 풀리는데 이는 봄 학기가 끝나는 5월에 이사를 나가는 집들이 최소 1-2개월 전에 통보하는 시기가 그 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착한 게 이미 이사 성수기인 7월 중순이었으니 여건 상(위에서 언급한 I-20) 더 일찍 도착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제야 집을 보기에는 나오는 물량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1,2 베드룸의 싱글족을 위한 작은 아파트가 대부분인 렌트 시장에서 애초에 3 베드룸 이상의 아파트는 거의 없는 데다가 매니지먼트 오피스가 아닌 개인별로 렌트를 구해야 하는 타운 하우스는 매물이 거의 없어 마냥 기다리다가는 내년 이사시즌까지 길에 나 앉을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대부분 대학원 가정에는 학부 과정을 마치고 공부를 계속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라서 결혼을 했어도 신혼이어서 아이가 없거나 과정이 끝날 때까지 자녀 계획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혹여 우리처럼 아이가 있거나 학군을 고려해야 할 만큼 큰 경우, 이런 이유들 땜에 아빠 먼저 와서 정착 준비를 마치면 남은 가족들을 부르기도 한다. 우리 같은 경우엔 워낙 움직이는 일이 규모가 큰 일이라 나눠서 오는 게 어려웠지만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어렵사리 소개를 받아 반쯤 교포 한국분인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 의뢰하게 되었다. 말이 한국 사람이지 미국 분과 결혼해 3/4쯤 미국 사람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만 한국 사람들이랑 꽤 일을 해와서 그런지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소통하는 데 있어 조금 수월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대하는 그분의 attitude는 이민 사회 특유의 친근함이 배어 있어 업무 자체보다도 이모뻘 되는 느낌이라 신뢰가 갔다.


캠퍼스 타운의 단기 렌트 계약은 거의 비슷한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렌트비와 기간에 합의하면 첫 달과 마지막 달 렌트비를 deposit으로 내고 혹여 기간 중 계약을 깨게 되면 미리 낸 deposit을 위약금으로 지불하는 식이다. 우리가 원하는 집은 시장에 나오지도 않았고 시기가 시기인만큼 가끔 나오는 집들은 턱없이 비쌌다. 몇 번의 계약이 어그러지고 나니 또 특유의 조급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국내 굴지의 광고 대행사에서 만났다.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광고 회사에서 신입 사원이 3년 동안 보고 배우는 것은 현란한 말빨로 계약을 따내는 루키의 신화가 아니라 어르신들 따라다니며 계약이 깨질 지경에 이르기까지 깎고, 빈정이 상하기 직전까지 치고, 결국은 얻어내는 것이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치사한 술수를 써가며 술로 풀고 달래고 그게 술수인지 요령 인지도 모르는 채로 닳고 닳아버린 선배들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니 번쩍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는 참으로 개버릇 못주는 보고 배운 방식이었다. 우리에겐 마침 정착 비용으로 가져온 목돈이 있으니 6개월 혹은 1년 치를 선불로 현금 지불하겠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계약할 집을 알아봐 달라고 중개인 분께 넌지시 제안했다.


며칠 후, 마침 지켜보던 타운 하우스에 급 매물이 나왔다. 중개인 분께 전화를 해서 바로 계약할 수 있게 준비해달라고 하고 키 받아 새 집에 들어갈 생각에 잔뜩 들떠서 15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웬걸, 그새 그 집주인이 맘을 바꿔서 다른 데에 계약하기로 했단다. 너무나 실망해서 뒤돌아 서는 우리에게 사실 근처에 본인 소유의 집이 하나 있는데 한번 보겠냐고 했다. 지금 머무르는 집의 서블렛 기간이 끝나면 당장 길에 나앉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안되니 보자고 했다. 막상 집에 가보니 상태가 너무나 열악하고 위치 말고는 딱히 장점이 없어 보였는데 그러기엔 가격대가 너무 높았는데 우리가 말한 조건대로 선불로 주면 가격대를 조정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어려운 처지니 웃돈 올려 일 년 치 계약을 묶어버리겠다는 제안)


엊그제까지 어떻게든 물정 모르는 신혼부부 도와주시려고 애써주신 교회 권사님 같아 보이던 분이 교활한 장사치로 보이는 건 순간이었다. 분명한 건 그 제안을 듣는 순간 이런 꼼수를 쓰려했던 우리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딱 그 짝이 아닌가. 그분이 일부러 계약 건들을 무산시켰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그땐 정말 그래 보일 정도의 정황이 꽤 있긴 했다) 그렇지만 젊은 애들이 돈 좀 쥐었다고 벌써부터 짱구를 굴리는 모습이 그닥 도와주고 싶다기보다는 좀 벗겨 먹어도 될 거 같다는 마음을 심어줬을 거 같기도 했다. 그 분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내고 우린 결국 써블렛 마지막 날 기적적으로 나타난 집과 따로 계약을 했다(그건 정말 기적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곳에 가면 그곳의 방식을 따르라는 표현이지만 이는 곧 순리를 따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닥친 일이 어려울 땐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손에 몇 푼 쥐고 있을 땐 생기는 유리한 옵션은 상당히 유혹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민 사회에서 자고로 돈 냄새는 함부로 풍기는 게 아니라는 거.

돈과 시간만 손해 보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고 마음을 다치게 되면 두고두고 관계를 맺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그 사회가 정한 규칙과 일반적으로 동의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결국 가장 빨리 가는 길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후로 우린 이사 다니고 수많은 계약 건을 두고 다. 시. 는. 그런 꼼수는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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