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만취 상태로 역주행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충격적이다.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많이 듣고 유머로도 접해서 익숙한데, 실제로 이런 일이 뉴스에서 나오니 놀라긴 놀랐다. 경찰관의 인터뷰가 압권이었다. "본인은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데 왜 다른 차들은 역주행을 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술이 웬수다.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 일 없이 검거되었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살면서 위험천만한 순간을 여러 번 맞이한다.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결국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가야 하는데, 물론 살면서 항상 그런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인도 다르질링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버스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에 반대편은 낭떠러지인 곳이었는데 굽이굽이 길기도 길었다. 운전기사는 곡예운전을 하는데 아찔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거야? 신기한 것은 그 누구도 거기에서 무서워하거나 긴장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대화도 나누며 가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철렁하다. 모르니까 그 버스에 탔고,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탔으니 나 또한 그랬나 보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는 게 감사하고 기적이고 막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도 생각해 보니 사고 날 뻔한 것은 사실 한국에서 더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사고 위험 빈도는 더 많은 시간 살고 있는 데에서 당연히 많이 일어나는 것일 테다. 아니면 가장 최근의 기억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생각도 하기 싫은 아찔한 기억이다. 일일이 떠올리기는 싫으니 그중 가장 섬뜩했던 기억 하나만 끄집어내본다.
한 번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형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다. 날 '뻔'했다는 것은 다행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그날따라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이었고 나는 음악에 너무나 심취해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그 골목에 차가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드라마에서 보면 갑자기 차가 나타나고 주인공은 가만히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 하다가 차에 부딪치는 것 말이다.
드라마를 볼 때에는 '저 사람, 저거 저거~ 좀 피하지 그걸 못 피하냐?' 그렇게 생각하곤 했지만, 직접 그런 상황이 닥치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내 옆에 걸어가던 사람이 내 팔을 끌어당겨서 나를 멈춰 세웠고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나는 그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이후로 음악과도 멀어졌다. 길 가면서 음악을 듣거나 휴대폰을 보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살고 싶긴 한가보다.
하나 더 생각났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트럭과 부딪칠뻔했다가 잘 피해서 간 적이 있다. 그 일은 언젠가 보았던 만화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떠오른다. 그 만화의 주인공이 고등학생 정도 되는 여학생이었다. 그 만화에서도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큰 트럭과 부딪칠뻔했지만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았다. 평소처럼 학교도 가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여차여차 진행되는 만화였는데, 마지막이 충격적이었다. 그 소녀는 첫 장면에서 이미 차 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영혼이 떠돌아다닌 것이고. 제목도 내용도 기억이 안 나지만, 문득 가끔 '나 살아 있는 거 맞지?'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그 만화 때문이었다. 파장이 크다.
여행작가 이지상의 첫 여행지인 타이완에 대한 감성 에세이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인간은 갑작스럽게 세상에 던져져 정신없이 살다 간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고통과 슬픔과 불안 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세상을 뜬다. 얼핏 보면 인생은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자신을 생의 순환 속에서 활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으로 본다면 누구나 우주의 신비에 참여하는 즐거운 승리자가 된다.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306쪽)
살아있어서 여행을 하게 되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그런 시간이다.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 역설적으로 사고, 질병, 죽음 등을 생각하다 보면 삶에 대해 더 강렬해진다. 오늘도 더 소중하고 행복하게 누리며 순간순간을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