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오늘도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요즘은 정말 살 맛 난다. 문득 하늘을 쳐다보더라도 죄다 그림 같고, 날이 좋아서 마음은 이리저리 떠다닌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늘 그렇듯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 동안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니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가 이유라기보다는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거절하기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바빠서' 아니겠는가. 정말 간절히 하고 싶다면 모든 일에서 우선순위로 그것부터 자리 잡게 되니, 다른 누군가가 '바빠서' 안 된다고 하면 '다른 일이 더 하고 싶구나'라고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문득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에서 읽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일화가 떠오른다.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 이것을 못하고, 시간이 없어서 저것을 못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은 시간이 넉넉해도 하지 못한다. 원래 시간은 상대적인 까닭이다.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 시간이 충분한 때는 오지 않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에게 할 일은 밀려들지 않는다. 일이 있는 사람에게 어차피 시간은 늘 빠듯하므로 할 일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을 쓴 소설가다. 하지만 소설가이기 이전에 그는 기호학자, 철학자, 미학자로서 세계적인 석학이다. 소설보다는 학문에 들이는 시간이 훨씬 많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당대의 천재라고 불려도 좋을 에코에게 인터뷰어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십니까?"
에코가 답했다.
"세상에는 틈이 많습니다."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89-90쪽
세상에는 틈이 많다. 시간에도, 일에도, 사람들 사이에도,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공간에도 말이다. 문득 책상, 책장 등의 가구 뒤나 텔레비전 뒷부분, 냉장고 사이 등의 '틈'에 시선이 간다. 한번 고정해놓은 가구는 잘 옮기지 않으니 벽과 가구 사이의 10cm 내외 공간에는 먼지가 쌓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서랍장 밑으로 들어가 버린 물건을 찾는다고 자로 훑으니 먼지도 함께 나온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우연히 청소를 하게 되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먼저 떠올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인 듯하다.
문득 10년 이상된 김치냉장고 먼지 때문에 화재가 났다는 기사를 작년에 본 기억을 떠올린다. 오래된 냉장고는 청소와 점검을 하고 위치를 옮길 때에도 서비스센터에 문의하라는 기사였다. 작년에 그 기사를 보았을 때에는 '아직 10년 안 되었네'라는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지금은 '얼른 냉장고 뒤의 먼지부터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차니스트 청소를 위해서는 더러움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무덤덤하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인지, 조금은 무딘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리를 잘하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말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지 않는다. 나만의 색깔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정리와 청소는 그저 도움을 줄 뿐, 나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무리하지 않고 내가 중심이 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행복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내가 만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소중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자신이 만족해야 결과적으로 인간관계도 원만해지고 일도 잘 풀리며 자연스럽게 돈도 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주위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때론 이유 없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197쪽
오늘은 각종 틈새에 먼지를 청소하기로 한다. 책상 밑, 책장 위아래, 책장 뒤, 텔레비전 뒤, 냉장고 위와 뒷부분의 먼지를 제거한다. 사실 청소기가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니 직접 닦는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모두 들어내고 깔끔하게 닦고 싶지만, 일이 커지니 꾹 참고 먼지만 슬쩍 제거한다. 그래도 꽤 많은 먼지가 제거되었으니 만족하며 오늘 하루도 멋지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