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모처럼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았던 날의 이야기다. 원하던 것을 온라인 주문에서 취소당한 후에 할 수 없이 직접 사러 간 경우였다. 몇 가지 채소, 두유 등을 구입하고 보니 금세 5만 원이 넘었다. 때마침 행사 중이라고 장바구니를 준다고 했다. 그런데 사은품이라고 주는 '장바구니'가 마트에 가면 비치되어 있는 그 플라스틱 바구니였다. '그냥 접어서 휴대할 수 있는 장바구니라면 좋겠는데, 왜 이 바구니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 말은 속으로만 하고, 딱히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서 가져오고 말았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을 보면 사은품이나 샘플 등 공짜로 주는 물건들이 필요 없는 경우에 아예 처음부터 거절을 한다는 글귀를 종종 본다.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의 저자도 공짜 물건은 거절한다고 했다. 나도 한동안 공짜로 주는 물건들을 그냥 받지 않거나, 혹시라도 샘플을 받을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쇼핑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계산하는 아르바이트생이 "5만 원 이상 구입하셔서 사은품으로 장바구니를 드려요."라고 해맑게 이야기하는데 거절을 못한 것이다. 오히려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가져와버렸다. 거절하는 게 미안했던 것이다. 괜히 열심히 일하는 청년 무안할까 봐 앞에서는 덜컥 받아오고 뒤늦게 후회했다. 이렇게 우리는 거절을 잘 못하다가 필요 없는 소비를 하곤 한다.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에 보면 가장 많이 버려지는 품목 1위가 '플라스틱 용기'라고 한다. 안 그래도 요즘 배달음식도 다 플라스틱 용기인 데다가 반찬 그릇이며 보관용기 등 무심결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너무 많으니 안타깝지만,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환경에 미안할 지경이다.
제 경험상 가장 많이 버려지는 품목 1위는 단연 플라스틱 용기 같은 주방용품입니다. 집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2위는 책이고 3위는 옷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전에는 백화점이나 전자제품 대리점 등에서 뭘 사면 사은품으로 플라스틱 주방용품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쓸 일은 없고 새것이라 버릴 수도 없다 보니, 수십 개씩 쌓여가는 것입니다. 쓰지 않을 물건이라면 애초에 욕심부려 받아오지 않는 것이 좋고, 어쩔 수 없이 받았다면 무작정 버리기보다 정리용 바구니로 재활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126쪽
『당신만 몰랐던 매혹적인 바다이야기 27』에 보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졌다」라는 글이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생산되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생산된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결국 가장 낮은 곳, 바다로 흘러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한번 바다에 들어간 플라스틱은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은 물론 인간까지 위협하는 것이다.
어쩌면 어제 받아온 이 사은품은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겠다. 언젠가 내 손에서 떠나서 세상 여행을 시작하면서 500년은 족히 떠돌아다닐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별로 필요 없지만 받아온 물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부터 나에게는 그동안 없었던 변화이다. 정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삶의 자세가 조금은 변화한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조금씩 변화하는 마음, 앞으로 필요 없는 물건은 소유하지 않겠다는 의지,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 환경에 매일 관심을 갖지는 못해도 이 순간만이라도 자연환경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