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접몽 Apr 17. 2021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풍장」 外

영화 <편지>를 보고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영화에 박신양과 故 최진실이 나왔다는 정도만 기억나지만, 영화를 보다가 처음 이 시를 접했던 내 마음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전율을 느끼던 그 순간 말이다.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의 초기 작품이라고 한다. 1958년에 《현대문학》에 발표한 작품인데, 작가가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 때 연상의 여성을 사모하는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연애시라고 하니 이 사실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러면 이쯤에서 일단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감상해보아야 되겠다.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



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



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



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출처: 황동규 삼남에 내리는 눈)


오늘은 황동규의 시를 감상해보기로 한다.



황동규 (1938.4.9~)

세련된 감수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서정의 세계를 노래해 문학엘리트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받는 중견시인이다. 1938년 평안남도 숙천에서 소설가 황순원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7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66~1967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다.

초기에는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사랑과 미움으로 정형화되어온 전통적 연애시의 정서와는 달리 신선한 정념의 분위기를 형상화한 시인 특유의 독특한 연가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두번째 시집 《비가》(1965)에서는 초기 시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수용의 자세와는 달리 숙명적 비극성을 담백하게 받아들여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좀더 성숙한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1968년 마종기, 김영태와의 3명의 공동시집 《평균율1》을 출간하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 이후의 시에서는 연가풍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제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모더니즘으로 자리잡았으며,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서 더욱 확실히 나타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집에 있는 시집을 펼쳐들고는 사실 의아했다. 황동규 시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즐거운 편지」 혹은 그 느낌의 시를 찾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모더니즘, 사회비판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 말이다. 꺼내들었으니 감상을 해보았는데, 이 책에 수록된 시 중에서 '편지'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제목은 '편지1'과 '편지2'였는데 이 또한 낯설었다. 그래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 세 편을 감상해본다. 어떤 느낌인지는 감상하는 이들의 몫이다.






조그만 사랑 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더 조그만 사랑 노래






아직 멎지 않은



몇 篇의 바람



저녁 한 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공중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더욱더 조그만 사랑 노래






연못 한 모통이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지



달려가다 달려가다 금시 떨어지는지




꽃잎을 물 위에 놓아 주는



이 손.




1995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70》을 발표함으로써, 1982년 《풍장1》을 시작으로 14년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계속적으로 발표해 문단의 화제가 된 연작시를 마감했으며, 이 연작시는 시집 《풍장》(1995)으로 발행되었다. 시인의 죽음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시집은 독일어판으로도 출간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냥 책장에 꽂혀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와닿지 않더라도, 어떤 의미인지 알고 보면 와닿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이 시집이 그랬으니 그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1982년 가을 어느 날 황동규는 서해와 남해안 섬을 몇 군데 되돌아보는 여행을 떠난다. 당시 인생의 반환점을 통과하여 사십대 중반의 연륜에 이른 그는 이때의 여행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천착한 일련의 시를 「풍장」이란 제목하에 발표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대여섯 편 정도로 마감될 예정이었던 이 연작시는 그러나 시인의 의도를 넘어 그뒤에도 지속적으로 씌어졌고, 그 결과 14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무려 70채에 달하는 크고 작은 별들로 이루어진 찬란한 성운을 형성하고서야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주제의 심도는 물론이고 창작 기간에 있어서나 물리적 부피에 있어서나 우리 시사에서 보기 힘든 야심적 시도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출처: 황동규 연작시집 풍장, 해설 <한 삶의 끝, 한 우주의 시작-황동규의 『풍장』> 남진우)

풍장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풍장 24






베란다에 함박꽃 필 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친구 하나 죽었다는 편지 쓰고



편지 속에 죽은 친구 욕 좀 쓰려다



대신 함박꽃 피었다는 얘기를 자세히 적었다.




밤세수하고 머리 새로 씻으니



달이 막 지고 지구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살려고만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죽음을 천천히 길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지니고 사는 일은 현실적으로도 얼마나 해볼 만한 일인가? 죽음은 밀어내면 낼수록 더 집요하게 밀고 들어오는 괴물이 아닌가? 자기가 죽어 들어가 누울 관을 미리 정성들여 짜 마루방에 놓아두고 이따금씩 그 속에 들어가 누워보곤 하는 사람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지 않은가. 죽음을 길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면 또 삶의 공포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죽도록 되어 있는 타자들과 운명 공동체적인 연대감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죽음이 존재의 뿌리의 흙을 북돋워주지 않는 삶, 혹은 삶을 위한 제사 행위와 관계가 없는 죽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손잡고 서로 상대의 일부를 이룰 때 각각 진정한 의미를 획득한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비로소 유한함을 벗어나 죽음처럼 무한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시의 빛과 그늘』, pp.212~13)


『풍장』을 쓰게 된 동기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황동규 시인은 2020년, 열일곱 번째 시집 '오늘 하루 만이라도'를 출간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황동규 시인의 시 「즐거운 편지」부터 「풍장」까지 감상해보았다. 사랑과 삶과 죽음을 살펴본다는 것은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 아니겠는가. 가볍게 시작해 묵직한 상념이 떠다니는 봄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형기 시 「낙화」 「폭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