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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18. 2021

박재삼 시 「울음이 타는 가을江」 「추억에서」 「한恨」

문득 뜬금없이 떠오르다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아서 입안에만 맴도는 글귀가 있다. 시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도 그렇다. '어디서 봤는데 그게 어디더라?' 오늘도 그런 게 있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그다음이 맴맴 맴돌기만 했다. 다행히 제목을 알아서 바로 찾아볼 수가 있었다. 바로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이다. 오늘은 박재삼의 시를 감상해보기로 한다.



박재삼 (1933.4.10~1997.6.8)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면서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애련하고 섬세한 가락을 노래했다.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서 추천되고, 1955년 시 「정적」이 서정주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으며, 같은 해 시조 「섭리」가 유치환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됨으로써 추천을 완료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시 「춘향이 마음」(1956)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59)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면서 소박한 일상 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애련하고 섬세한 가락을 노래했다.

· 슬픔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정서에 한국적 정한의 세계를 절제된 가락으로 실어, 그 속에서 삶의 예지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이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음으로써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계이다.

그는 그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만, 때로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거리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박재삼의 시는 1950년대의 주류이던 모더니즘 시의 관념적이고 이국적인 정취와는 달리 한국어에 대한 친화력과 재래적인 정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어, 전후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니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추억追憶에서 33






잠이란 하늘에서 무슨 큰



동아밧줄이 내려와



우리의 눈썹 있는 데서 멎어



찰랑대는 바닷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슴에 하염없고 쉴 새 없는



엷은 물살을 받으며



자부름으로 속삭이는



숨결을 느꼈었다.





그 잠이나 자부름은



오늘도 안 다치고



그대로 갖고 있건만,



공일과 같이 편히 우리 몸에 오건만,



이 되풀이 속에 어느새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잠으로



조금씩 길이 드는 것이여.





추억追憶에서 67






晋州장터 생魚物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銀錢만큼 손 안 닿는 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晋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한 恨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뻗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뻗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前生의 내 全설움이요 全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자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이렇게 제목이라도 알면 찾아볼 수 있지만, 어떤 때에는 결국 떠올리지 못하고 만다. 마침내 생각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곧바로 잊고 다른 데에 집중하게 된다. 그만큼 절실하지 않은 것이며, 잊어도 되는 거니까 잊는 거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러면서 오늘은 문득,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차근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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