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바람에 벚꽃 구경 제대로 못한 채로 꽃이 다 져버린 것을 탓하며 조지훈의 「낙화」를 떠올렸다. 「낙화」라는 제목을 생각해 보면 시 한 편이 더 떠오른다. 바로 이형기의 「낙화」이다. 오늘 보니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철쭉의 시대가 가고 장미꽃 한 송이가 툭~ 피어있다. 한 종류의 꽃을 1년을 두고 보면 그리 오랜 기간 피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류별로 보면 쉼 없이 피고 지며 세월이 흐른다. 꽃봉오리가 보이는 듯하다가도 어느덧 화려하게 피어있고, 그 이후에는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다. 꽃이 피면 지게 마련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이형기의 시 「낙화」를 감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형기 (1933.1.6~2005.2.2)
1933년 1월 6일 경남 진주 출생.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연합신문』, 『동양통신』, 『서울신물』 기자 및 『대한일보』 문화부장 등을 역임하고 동국대 국문화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3기로 구분된다. 시집 『적막강산』으로 대표되는 제1기는 생의 근원적 고독과 세계의 공허를 일찍부터 깨달은 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펼쳐 보이는 시기이다. 이 시기 시들의 저변에는 생의 허무가 짙게 깔려 있다. 그 생의 허무에 대해 단순히 한스러워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보다 담담하게 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세속적 계산과 이해를 떠나 존재의 무상한 물결에 그대로 몸을 싣고, 유유자적하게 삶을 유영하는 초탈의 면모가 돋보인다. 제2기는 이전 시의 투명하고 절제된 서정에서 벗어난 보다 격렬한 탐미성을 드러내 보인 1970년대 이후의 시기이다.
초기시가 존재의 허무를 내면화시켜 그에 대한 자의식적 반응을 억제하였던 것에 반해, 이 시기에 들어서면 존재의 허무를 표면화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자의식의 반응을 날카롭게 돌출시킨다. 즉, 제1기의 시 세계가 음울하기는 하나 담백한 수채화의 형상을 갖고 있다면, 이 시기의 시는 원색적이고 야수적인 성격을 띤다. 파괴본능과 광기, 살해충동 따위의 모티브가 자주 쓰인다. 그러한 소재들을 통해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허무를 표상하는 죽음 앞에서 한 자의식 강한 인간이 펼쳐 보이는 절망적인 저항의 몸짓, 혹은 강한 생명력이 부정적으로 연소되는 모습이다.
죽음에 의해 그 한계가 명백해진 인간적 삶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 제2기의 주된 특징이다. 따라서 생명의 연소력을 가장 악마적이고도 과격한 형태로 보여주는 탐미적인 성격을 띤다. 이렇듯 분열되고 기괴한 모습의 의식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한차례 변모를 겪으며 안정을 되찾는다. 그 안정은 대체로 세계의 허망함을 한 발자국 비켜선 자리에서 관찰하는 심적 여유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의 시인의 언어는 충격과 폭력의 방식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고, 세계의 공포를 다소 냉정하게 바라보며 그를 담담하게 수용하는 차분함을 띤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낙화」는 조지훈의 「낙화」와, 「폭포」는 김수영의 「폭포」와 수능 연계 문제로 많이 나오나 보다. 밑줄 긋고 조각조각 암기하며 공부해야 시험 준비에 마땅한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딱히 그것 말고 달리 공부할 방법도 없긴 하겠다. 오늘은 한때 화려한 빛깔로 나를 잡아끌다가 이미 다 지고 말아버린 마당의 철쭉을 기리며 「낙화」를 떠올렸는데, 수능시험을 준비하며 봄날을 보내는 수험생들을 떠올리며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