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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15. 2021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 「생의 감각」

우리 동네에 길이 새로 뚫렸다. 구불구불 가야 하던 길도 씽씽 달릴 수 있는데, 가끔은 동네 개들이나 꿩도 길을 건넌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원래 거기에 살던 동물들인데, 그것도 대대손손 느릿느릿 삶을 누리며 살아가던 터전이었을 텐데, 갑자기 인간이 길을 뚫어놓더니 자동차라는 낯선 물체가 쌩쌩 다닌다. 위험천만하다. 갑자기 그들만 터전을 잃은 것일 테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오늘은 문득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생각난다. 학창 시절에 이 시를 접했을 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주변에 뚱뚱한 비둘기들이 먹을 것을 노리고 걸어 다녀서 '닭둘기'라고 놀리던 기억만 있지만,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세상 말세 아닌가. 오늘은 본격적으로 김광섭의 시를 감상해보아야겠다.





김광섭 (1905~1977)

시인. 독립운동가

· 생애 및 활동사항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 1932년 대학졸업 후 귀국하여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194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지를 발행했다. 그가 문학에 뜻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 이헌구와 교분을 맺으면서부터인데,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의 우리나라 학생 동창회지인 『R』에 시 「모기장」을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詩苑)』에 「고독」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읊은 것이었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초추」 등이 있는데,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이 배경이 된 것들이었다.

광복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해 창작과 단체활동을 병행했다.

한편, 계도적인 민족주의 문학론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후기의 작품들은 1966년에 간행된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년 간행된 『반응』에 수록되었는데 전자에서는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1960년대의 시대적 비리도 비판하였고, 후자는 사회성을 띤 시들로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의 시편들은 관념이 예술적으로 세련, 승화되어 관조와 각성의 원숙경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지조를 고수한 시인이며, 초기의 작품은 관념적이고 지적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성과 문명의 괴리현상을 서정적으로 심화시킨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김광섭'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학창 시절 배웠던 「성북동 비둘기」, 그리고 그의 시 「저녁에」는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러면 「성북동 비둘기」부터 다시 감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겠다.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인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 문학」(1968.11)에 수록.



기계 문명 속에서 자연미와 평화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음을 개탄하고 있다.



주제는 자연미에 대한 현대인의 향수.




(출처: 한국의 명시, 은광사)







생(生)의 감각






여명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현대 문학」(1967.1)에 수록.



작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1주일간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체험을 구상화한 시작품.



소재는 투병 생활.






예전에 그의 시 「생의 감각」을 무덤덤하게 감상했던 기억이 얼핏 난다. 학창 시절에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마음에 훅 와닿는 것은 작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1주일간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체험을 구상화한 시작품이라는 데에서 구체적인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은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흘러서일까. 오늘은 김광섭의 대표시를 살펴보며 동물의 마음도 짐작해보고, 투병하는 인간의 마음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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