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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14. 2021

이육사 「교목」 「子夜曲」 「파초」

언제 그랬냐는 듯 벚꽃길은 다시 나무만 보이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꽃이 지면 너무나 허무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꽃 못지않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연둣빛 이파리가 눈에 띄는 것이다. 꽃이 피었을 때는 그 시기대로, 꽃이 진 후에는 또 이 시기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또다시 이육사의 시가 생각난다. 「광야」나 「꽃」에서는 희망의 결과와 신념을 노래하고 있다지만, 「교목」에서는 섣부른 희망이 아니라 현실을 견뎌내는 것에 대해 노래하는 거라고 배웠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은 견뎌내는 것! 단단하게 굳은살이 배기며 버텨가면서 살아내는 것이리라. 그래서 오늘은 이육사의 시 「교목」과 「子夜曲」 「파초」를 감상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육사는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예안 보문의숙을 거쳐 중국에서 군관학교 및 북경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33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고 등단했으며 「청포도」(1939) 「절정」(1940) 「자야곡」(1941)을 『문장』에 발표하였다. 신석초·윤곤강 등과 「자오선」 「시학」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무장항일단체인 의열단에 가담하여 3년 간의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지사로서의 자리도 뚜렷이 남겼다.
1944년 작고 후 『육사시집』(1946)이 간행되었다.

(출처: 광야, 이육사,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8, 미래사)

喬木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子夜曲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쟎는 무덤 우에 이끼만 푸르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날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라 치쟎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소리





숨막힐 마음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들리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쟎는 무덤 우에 이끼만 푸르리라.





파초






항상 앓는 나의 숨결이 오늘은



海月처럼 게을러 은빛 물결에 뜨나니





파초 너의 푸른 옷깃을 들어



이닷 타는 입술을 축여주렴





그 옛적 사라센의 마지막 날엔



기약없이 흩어진 두 낱 넋이었어라





젊은 여인들의 잡아 못 논 소매끝엔



고운 손금조차 아직 꿈을 짜는데





먼 星座와 새로운 꽃들을 볼 때마다



잊었던 계절을 몇 번 눈 우에 그렸느뇨





차라리 천년 뒤 이 가을밤 나와 함께



빗소리는 얼마나 긴가 재어보자





그리고 새벽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어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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