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다
온종일 하늘이 운다. 어쩐지 나는 귓가에 맴도는 빗소리가 좋다. 비가 좋아졌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이런 말이 들려온다.
“나이 들어서 그래.”
맞는 말인 것 같다. 어릴 때는 비 오는 날이 불편해서 싫었다. 이제는 빗소리가 좋다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종일 울어대는 하늘에게 미안하지만, 이 좋은 기분을 가득 안고 길을 나섰다.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빗길 운전이라 조금 엄살을 떨었다. 평소 보다 힘주어 핸들을 잡았고 더욱 차분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얼마쯤 갔을까. 왼쪽 깜빡이를 켜고 안절부절못하는 ‘초보운전’ 차 한 대를 보았다. 너그럽게 속도를 줄여주었는데도 들어오질 못했다. 얼마나 두려울까. 내 초보 시절이 생각이 나서 그에게 길을 내주고 싶었다. 이렇게 잠시 얼굴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갈 인연일지라도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아마도 기분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다행히 차가 많지 않아서 더욱 속력을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내 차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야 그는 안심하고 차선에 합류했다.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시속 30km 이상 밟지 못하는 그가 가여워서 차마 앞질러 갈 수가 없었다. 더딘 그의 속도에 다른 차가 크락션을 울리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따랐다. 덕분에 평소에 세 개의 신호가 한 번에 열려 쉬지 않고 가던 길을 신호마다 멈춰야 했다. 결국 나는 예상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도착했다.
마땅히 배려하고 양보하고, 때로는 위로하며 사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위하는 선행에는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크고 작음을 가늠할 수는 없으나 그에 마땅한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인지 그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초보운전자는 알고 있을까. 오늘 그가 받은 호의는 누군가의 작은 헌신이 담겨 있었다는 걸.
그토록 아름다운 빗소리도 잠시 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분명히 알았다. 그동안 내가 넘치게 받은 호의와 배려 속에도 누군가의 희생이 녹아있고 어떤 이의 헌신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알아주지 못한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진정한 위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다. 조건 없이 시간을 내어주며, 때론 불편을 감수하는 희생이다. 내게 있는 것을 값없이 나누어 줄 수 있는 헌신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빗소리가 좋아지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삶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