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낸 동생이 있다. 매주 일요일, 우리는 종일 같은 일정을 보낸다. 점심 식사 후 차를 끌고 근처 카페로 나왔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어디 가요?”
“응, 커피 한잔하러 나왔어.”
“그럼 올 때 내 것도 한 잔만 사다 줘요”
“그래 그래, 아이스 살까, 뜨아로 살까?”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아이스를 선택했다. 겨울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먹는 그녀이다. 잠시 고민하는 걸 보니 조금씩 건강 생각을 하는가 보다.
2주가 지났다. 이번에도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전 일정을 마친 후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그녀가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했다.
“어디야?”
“편의점 앞이요.”
“그럼 올 때 나도 커피 한 잔만 사다주라.”
“아.., 귀찮은데.. 알았어요.”
핸드폰 너머로 미간에 주름진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조금 민망했지만, 다행이다. 내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아서.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2주 전 나에게 부탁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잊었나 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날도 더운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들고 오기 힘들었나 보다. 아마도 그녀는 그날, 만사가 귀찮은 날이었나 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씁쓸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혹시 다음 주에 그녀가 다시 커피를 주문한다면, 나는 흔쾌히 받아 주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것의 양과 질은 더하기 빼기처럼 명쾌하게 정답을 내릴 수가 없다. 저울에 달아서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는 쪽을 선택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고 손을 펼 수 있는 여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을 아는 지혜, 때론 오는 게 없어도 가는 길을 만드는 용기. 이것이 바로 넉넉한 마음을 품고 사는 마흔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