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한 해의 끝을 알리며,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 공존하는 애매한 시간. 원한 적도 없고 올해 계획하지도 않았던 작은 수술을 했다. 사실 진작에 몸은 말하고 있었다. 쉬어야 한다고. 그러다 큰코다친다고. 그 신호를 외면하고 그렇게 버티다가 정말 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마지막 미련까지, 모두 내려놓았다.
작년 12월에 참 많은 일을 하고 살았다. 나는 마치 어항 속에 살던 금붕어가 강으로 나가 헤엄치는 것과 같았다. 그 좁은 어항 밖에서 만난 한계와 경계가 없는 강의 세계는, 놀랍고 신비로운 일 투성이였다. 나는 정말,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고전 「데미안」의 명대사로 유명한 말이다. 사람이 이전과 다른 삶으로 도약하고 성장을 이루어 내려면, 한 세계를 깨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오고, 개구리는 알에서 시작해 올챙이 시절을 겪는다. 나는 어항이라는 작은 세계를 깨고 강이라는 다른 세계로 나왔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미처 몰랐다. 새와 금붕어는 처음부터 달랐다는 사실을. 새는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이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알을 깨지 못하면 새는 죽는다. 저 높고 푸른 하늘을 비상하기 위해서 알 밖으로 나온 게 아니다.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금붕어가 어항을 깨고 강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처음엔 바뀐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얼마 동안은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에서 수정하고 산란을 하는 야생의 과정까지 거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살던 금붕어는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해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남는 금붕어들도 있다. 이들은 습지와 연결된 강으로 가서 먹이가 되는 담수 조류를 먹고 애써 산다. 그 결과 다른 토종 물고기들의 먹이가 없어져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얼마나 먹어대는지 이들은 대형 물고기로 자란다. 무게는 1~2kg 정도 되며, 어항 속 물고기보다 8배나 크다.
원래 금붕어는 붕어를 관상용으로 만든 품종이다. 처음부터 야생에서 살 운명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금붕어가 가장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어항 속이다. 가끔 역행하여 강에서 몸집을 키우는 금붕어도 있지만, 제자리를 벗어난 그는 다른 생태계를 위협하는 괴물 금붕어가 될 뿐이다.
사실 우리는 새도 아니고 금붕어도 아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새처럼 알을 깨고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투쟁의 시절도 있고, 금붕어처럼 어항 속에서 잠잠히 살아야 할 때도 필요하다. 중요한 건 내가 새 인지, 금붕어인지를 가늠하는 씨름이 아니라, 때를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알을 깨고 나아가야 할 때인지, 어항 속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할 시기인지 아는 지혜. 그때를 잘 몰라서 우리는 잠잠해야 할 때 알을 깨다가 지치고, 나아가야 할 때 어항 속에서 머물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지금 알을 깨고 있다면, 멈추지 말고 힘을 내어 보자. 그 세계가 깨지고 나면 당신이 비상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테니. 혹시 지금 어항 속에 있다 하더라도, 너무 슬퍼 말자. 답답해하지 말자. 나와 당신이 깨고 나갈 시간은 다시 온다. 그날을 위해 잠시만 머무르자. 여기,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 안전한 어항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