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계절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진부한 말의 힘을 빌려 가끔 겨울잠 자는 다람쥐처럼 깊이 숨어 들어가기도 하고, 소리 없이 고개 드는 봄눈처럼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나는 오늘, 예전에 살던 동네의 작은 카페에 앉았다. 어제는 익숙했지만 오늘은 한없이 낯설기만 곳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다. 오직 나만, 나를 안다.
몇 개원 전에 수술한 오른쪽 무릎이 어쩐 일인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올겨울은 염려와 걱정으로 불안한 나날들을 보냈다. 병원에서도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수술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뿐이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딜 뿐이지 결국 걸어지고, 통증도 줄고 있다. 나는 내 몸의 속도에 맞추어 시나브로 회복 되고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있다. 장거리 마라톤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통제다. 너무 빨리 뛰어도 금세 숨이 차서 멈출 것이고, 너무 느려도 제시간에 갈 수 없어서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자기 통제는 마음에 달렸다.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이 진부한 말을 결국 꺼낼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사는 인생인가보다.
속도에 민감한 때가 있었다. 사회적 알람이 삶을 재촉하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가르치는 자들의 소리가 귓전에 맴돌 때 나의 계절은, 늘 겨울과 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처럼 모호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는 좋았다. 곧 봄을 만날 거고, 가을을 사귈 시간이 다가올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방송인 이영자 씨가 어느 군부대에서 했던 강연의 한 내용이 떠올랐다. 거북이가 토끼와 경주를 한 이야기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물었다.
“거북이는 왜 토끼와 경주를 했을까요?”
“분명히 토끼와 게임이 안 되는 걸 알았을 텐데 말이에요.”
그녀의 대답했다.
“거북이는 열등감이 없기 때문이에요.”
거북이는 자기 통제의 끝판왕이었다. 자신의 속도에 민감하지 않았다. 토끼와 비교하지 않았다. 창조의 질서에 순응하며, 그저 자신을 인정했다. 거북이도 분명 알았을 것이다. 자신은 절대, 달리기로 토끼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거북이에게 중요한 건, 토끼를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아가기로 결정한 그 길을, 나의 속도로 그저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거북이가 경주를 시작한 이유다.
결국, 거북이는 이겼다. 사실 그의 진정한 승리는 토끼를 이긴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정한 그 길을 향해 나아가면서 비로소 바라고 향하여 갔던 그 자리에 도착했다는 결과에 있다. 어쩌면 나와 당신은 거북이처럼 조금 느리게 보일지라도 사실은 가장 적당하고 합리적인 속도로 우리의 길을 걷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토끼의 앞선 걸음을 보면서 낙심하지 말자. 때가 되면 나와 당신, 우리는 결국 그 길 끝에 닿을 테니까. 그 길 끝에서 앞서간 자를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뒤에서 걷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며, 승리의 노래를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