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에 대한 시선
스무 살. 학교를 박차고 떠난 극단에는 일거리가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이 친구야, 얼마나 일 손이 부족했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에게 일을 몽땅 맡겼겠니? 고등학생티를 채 못 벗어 칭찬에 목마른 스무 살. 누가 봐도 완벽한 일꾼이었을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클리어하다 보면 또다시 나를 가로막는 커다란 벽들. 그땐 그런 걸 깨부수는데 재미를 느꼈다. 막히면 좀 돌아가면 될 것을, 멍청한 스무 살 청년은 온몸으로 그 벽을 맞이했다. 그땐 몰랐다. 그렇게 벽을 부수고 나면 나를 찾아오는 온갖 짜증과 예민함을 대부분 사람들이 스트레스라 부른다는 걸. 아무것도 모르니 그 스트레스를 다룰 줄도 몰랐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오면 항상 허기졌다. 하긴 점심을 먹어도 뒤돌면 허기질 나이인데, 저녁도 못 먹고 집에 오면 얼마나 배가 고팠겠냐. 가족도 친구도 없는 동네. 집에 오면 텅 빈 집에서 풍기는 외로움이 날 반겼다. 허기짐인지 허전함인지 구분도 못하는 나는 배달을 시켰다.
그때만큼 배달 음식을 입에 달고 산 적이 없다.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저 치킨 혹은 피자. 질리면 족발 아님 닭발. 식기구 하나 제대로 없는 자취방에서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뱃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다. 역시나 그건 나의 욕심이었고 다 먹지도 못한 음식을 바라보며 자괴감에 빠지기 일수였다.
그 어떤 것도 내 허기짐을 채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허기짐은 음식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정답 없는 20대의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허기짐이었나 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허기짐을 음식으로 다음엔 술로 다음엔 매운 것으로 옮겼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음식을 맵게 먹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계란은 없어도 청양고추는 있었다. 이미 맵고 매운 음식에 의식이라도 하듯 고추를 몇 개씩 썰어 넣었다. 음식을 먹으며 땀이 송글 맺히고 혀가 얼얼해야 만족을 했다. 다음날 쓰라린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왕래하면서도 매운 음식을 놓치지 못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은 결국 식도염이 생기고 나서야 그만두게 되었다.
약을 먹으며 생각했다. 왜 나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위장을 괴롭히나.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가 고작 날 괴롭히는 건가. 먹을 거에 풀던 스트레스가 이제 슬슬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멈춰야 한다는 걸 알았다. 병원을 다니며 비싼 돈을 쓰니 금방 알겠더라.
지난 시절 스트레스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식고문'을 하던 나를 생각하면 조금은 바보 같지만, 밉지는 않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현재의 소중함을 더 절절히 느끼는 게 아닐까. 난 아직도 매운맛이 좋다. 혀 끝이 살짝 얼얼하고 콧등에 땀방울 맺히게 하는 맛이 좋다. 딱 그 정도만.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은 많으니 그 정도면 됐다.
오늘도 나는 신라면에 청양고추 하나를 썰어 놓는다. 스트레스라는 게 각자의 방법으로 푸는 거라 하지만 나를 괴롭히며 풀지는 말자고 약속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