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서울에 가야 하나

스물일곱,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by 산도롱

휴대전화에는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다양한 색깔의 앱들이 가득했다.


“이건 아까 봤던 집, 여긴 관리비가 너무 비싸고, 에이 여기 살 바에는 그냥 용인에서 출퇴근하지.”


혼자 중얼거리는 게 버릇이 되었나. 정리하다가 만 박스 옆에 쭈그려 내일 보러 갈 집들을 골랐다. 세상이 이렇게 편해진 만큼 내가 갈 집들도 사라지는구나. 이사 갈 곳도 안 정했는데 짐 정리를 하는 내가 안쓰러웠다.


“매트리스는 마지막에 버릴 걸… 내 방이 이렇게 컸나… 자꾸 중얼거리게 되네”


용인에서 3년을 버텼다. 대학 때문이라지만 상황상 학교에 간 건 19년도가 마지막이었고 다음 해부터 곧바로 일을 다녔다. 빨간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일주일에 몇 번씩 도시와 도시를 왔다 갔다. 어쩌면 버스에 앉아있던 시간이 집에 머문 시간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졸업을 앞두고 드디어 탈출이다 했건만, 돈이 발목을 잡았다.


“응 내일 세 군데 정도 보고 출근하려고… 엄마 보증금 오백은 서울에 없는 거 같어… 월세는 얼마까지가 괜찮을까?... 꼭 서울에 가야 하나?”




꼭 서울에 가야 하나.


코가 시큰거렸다. 여기도 살기 좋은데. 그냥 아침저녁 내가 더 고생하면 되는데. 내 이기적인 마음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언제까지 부모님 등에 업혀 있어야 할까. 집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과, 나에 대한 혐오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끝까지 모른 척하고 싶었던, 생산성 없는 나의 전공과 꿈. 언젠가부터 느껴진 주변 사람들의 한심한 시선. 몇 년 전부터 차오르던 우울한 감정들이 이제 넘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도착한 용인은 정말 추웠다. 까까머리 티를 다 벗지 못한 채로 이 집 저 집 둘러보다 지금 사는 곳을 만났다. 정사각형 모양의 원룸. 창으로는 해가 잘 들어왔고 조그마한 베란다는 빨래 널기에 딱 좋아 보였다. 난생처음 집 구하는 거치고는 생각보다 잘 구했다고 믿었다. 학교는 멀지만, 조용한 하천이 가까워 더 맘에 들었다. 여기서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헛헛한 마음을 안고 나는 다시 휴대전화 속 땅덩어리를 뒤졌다.




처음엔 친구와 함께 살려고 했다. 그러면 월세 부담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부동산 몇 군데를 같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뒤, 같이 살기 어렵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이 살자는 얘기를 할 때도, 집을 구하러 다닐 때도 이 느슨한 계약 관계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질 수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끊길 줄은 몰랐다. 이유가 뭘까.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 뒤 나는 그 이유에 대하여 파고들었다.


나랑 같이 살 수 없는 이유가 뭐였을까. 그 질문은 먹이를 잡은 뱀처럼 나를 옥죄었다. 나의 말투, 생김새, 행동거지는 물론이고 나에게서 냄새가 나는지 내가 모르는 나쁜 버릇이 있는지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이유나 물어볼걸. 타이밍 놓쳐서 하는 짓이 내 마음 갉아먹기였다.




“어 엄마, 오늘 좀 봤는데 영… 내가 눈이 너무 높은 걸까?”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부쩍 엄마한테 전화하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엄마의 향기가, 엄마의 얼굴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세대 주택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산과 바다가 가득한 고향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가격대에 맞는 집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겨우 찾아, 보러 가면 슬픈 마음만 한 아름 생겼다. 그 와중에 용인에서 사용하던 작업실 만료 기간도 다가오고 회사 업무도 하나둘 늘어갔다. 뭐 하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끝낼 수 있는 일이 뭘까. 집을 구하는 거였다. 집을 구하면 이 복잡한 마음도 일단락되고, 쏟아지는 업무와 전화도 다 받아칠 수 있었다. 그래, 길어야 1년이다. 1년만 버텨보자. 나는 다시 휴대전화 속 땅덩어리를 뒤졌다. 그리고 가장 괜찮은 하나를 골랐다




대충 정한 것치고는 동네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역에서 좀 걸리는, 약간 동산이 있는, 편의점이 먼, 주차장이 없는. 단점이 참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좋은 점이 가득했다. 공원이 정말 가까운, 오토바이조차 지나다니지 않는, 도로가 깨끗한, 앞에 아무 건물이 없는. 수더분한 공인중개사 아저씨도 마음에 들었고, 세면대는 없지만, 꽤 널찍한 화장실도 맘에 들었다.


“이 가격에 방 두 개면 뭐…”


혼잣말로 또 중얼거렸다.


“여기 언제 이사 올 수 있을까요?”

“아무 때나 상관없어요.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좋은데요, 청소만 잘 부탁합니다!”


계약금까지 입금하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부동산을 빠져나오며 조금 눈물이 났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완전한 책임이다. 내가 괜찮은 선택을 한 건지, 놓친 부분은 없는지, 복기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물은 엎질러졌고, 주사위는 던져진 거지.


“뭐 어쩔 수 있나. 이제 정 붙이고 살아야지. 이사하는 날 알려줘 엄마 올라갈게.”




나는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을까. 누군가는 결혼을 하던데, 나는 계약 하나에 벌벌 떠나. 아직 덜 큰 내 마음을 달래며 용인행 버스를 탔다. 집 구하는 내내 시렸던 코끝은 그제야 좀 괜찮아졌다. 요 몇 주 동안 엄마를 속으로 얼마나 불러댔는지. 또 앞으로는 얼마나 부르고 다닐지. 내 나이가 되면 꽤나 근사한 하루를 맞이할 줄 알았는데. 내가 마주한 스물일곱은 아쉽게도 서글프고, 헛헛하며, 옹색했다.


근데 뭐 어쩔 수 있나. 정 붙이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