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3년치의 짐을 싸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이사 전날까지 촬영이 잡혀있어 미리 짐을 정리해놔야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단편영화 소품으로 썼던 PP박스를 꺼내는 거였다. 1년 넘게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어 먼지가 한 가득이었다. 마스크 두 장을 끼고 박스를 벅벅 닦았다. 1년 치의 먼지는 몇 번의 걸레질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 이제 짐 챙길 준비는 끝났고. 뭐부터 넣어야 하나.”
혼자 하는 이사가 처음이라 계산이 어려웠다. 계절 옷은 이미 다 챙겼고, 수많은 소품들을 챙겨야 하는데 어떤 순서로 정리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상자 안에 함부로 넣었다가는 꼭 다시 꺼내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았다. 절대 다시 상자를 여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하고 쌓여있는 책부터 넣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이것저것 넣기 시작하니 속도가 붙었다. 안 쓰는 전자제품부터 음악 CD며 식기들이며 순서는 없지만, 차곡차곡 박스 안을 채워 넣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퇴근하고 밤늦게 들어와 잠을 줄이며 짐을 쌌다. 박스 사이에 겨우 몸을 뉘어 자는 게 부지기수였다. 쓰레기는 또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그 공간에 카메라를 들이민다면 그것이 <궁금한 이야기 Y>요, <세상에 이런 일이>였을 거다.
몇박 며칠의 과정으로 얼추 정리가 마무리되었을 때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거… 상자가 부족하겠는데…’
이미 6호 상자들이 벽면을 가득 채웠건만, 아직도 짐이 한 참 남았다. 더군다나 아직 정리하지 않은 작업실 짐까지. 낭패도 이런 낭패가. 결국, 나는 상자들을 다시 열고, 버릴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난 내가 쿨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질척거리는 것을 넘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인연을 끊은 친구와의 사진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들은 물론, 이제 입지 않는 옷들부터 몇 년은 된 내 영화의 소품들까지. 물건 하나하나를 다시 상자에서 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버리기 힘들었던 건 대학을 다니며 만든 영화의 물건들이었다.
페이퍼 한가득 적힌 교수님들의 크리틱, 개발새발 낙서 같은 콘티들. 너무나 생생한 실패의 기억.아무도 소비하지 않는 것.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 종이를 들고 한 참을 서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실패의 역사를 마주했다.
이렇게 모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건만, 버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가지런히 정리하여 버리면 꼭 누군가 볼 것만 같아 벅벅 찢어 버렸다. 고군분투의 슬픔을 버리고 자만심 가득한 가소로움을 버렸다. 그렇게 내 실패의 역사는 천 이백 원짜리 50리터 쓰레기봉투 속으로 사라졌다. 졸업하는 기분이 들었다. 졸업 영화를 마무리했을 때도, 영화제를 끝마치고 꽃다발을 받았을 때도 오지 않은 헛헛함이 그제야 찾아왔다. 방에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대망의 이사 날. 기사님은 짐이 너무 많다며 이 만원을 더 달라 하셨다. 예상은 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탑차를 타고 용인을 벗어나며 내다 버린 쓰레기 봉투를 생각했다. 작업을 함께했던 배우들, 스텝들을 떠올렸다.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기사님은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럴까.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을 둬야 할까. 그럼 내가 버린 것들을 잊어야 하는 데. 차에서 내려 짐들을 옮기며 버리지 말걸 후회했다. 가방에 넣든 손에 들 든 다 가져올걸. 따로 담아 택배를 보내서라도 모조리 챙겨올걸. 이미 봉투를 수거해갔을까. 찢어버리지 말 걸. 사진이라도 찍어놀걸. 실패를 버릴 준비가 안 된 자의 미련한 후회였다.
부모님께 이사를 잘 마무리했다는 연락을 드렸다.
“그래, 고생했어”
그러게요. 고생했어요. 혼자 큰일을 치렀어요.
누가 옆에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을까요. 제가 잘한 게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