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진 결핍은 무엇인가요
최근 '내가 겪은 결핍'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결핍을 지렛대 살며 살아온 터라, 생각나는 것들이 많았다.
바뀔 수 없던 결핍들부터, 노력하면 바꿀 수 있던 결핍들까지.
정말 다양한 결핍들이 존재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결핍은 양면성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한다.
먼저 누군가에게 결핍은 부정적인 것들, 숨기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것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극복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다.
결핍을 인정하고, 그것과 멀어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 경우 나를 깎아먹을 수 있던 결핍을 성장 기회로 삼게 될 수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과거에 정말 열정이 넘쳤을 땐,
"그렇게 사는 원동력이 뭐야?"라는 질문에 "결핍이 나의 힘이야!"라고 말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나도 어릴 때부터 이런 "뿌셔뿌셔 정신"을 가진 건 아니었다.
과거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원망을 할 때도 많았다.
예를 들면 작은 키,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애매한 외모,
공부를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
소극적이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성격까지.
어린 나이에는 이런 '모자람'들이 크게 다가와서 늘 위축돼 있었다.
그래서 나를 감추기도, 숨기도 많이 숨었다.
이랬던 내가 태세 전환을 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당시 회장 선거를 하는데, 후보가 나오지 않자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반장으로 지목하셨다.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방식이지만, 그때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구석에서 늘 조용히 있던 나를 왜 반장으로 시키셨는지 모르겠다.)
극소심 유형에서 덜컥 한 반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을 앉게 된 나.
소심했지만 다행히도 마음속 책임감은 투철한 아이였는지,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하게 됐다.
쉬는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 칠판을 지우고,
수업 시작 종이 울리면 복도를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자리에 앉히고,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중재도 해주고,
반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고,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효능감을 얻게 됐다.
그 결과, 이후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임원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내 결핍을 대하는 성향도 많이 변했다.
키가 작은 게 단점이라 생각했지만, 덕분에 날렵해서 운동신경이 좋다는 게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서울시 교육청 소속 육상부로 활동했을 정도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애매한 학생이었지만 그 덕에 다양한 부류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겪게 됐고, 그 결과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지게 됐다.
학창 시절 마지막 결핍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친언니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에 나는 아무리 비벼도 서울대학교 타이틀은 쥘 수가 없는 학생이었다.
입시 스트레스가 굉장하던 때라, 압박감이 컸고 "나는 아무리 잘해도 언니만큼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압도됐다.
그때는 네임밸류에 대한 일종의 결핍이 생겼다.
하지만 그 결핍 덕분에,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삼성전자보다도 규모가 큰 외국계 기업에 다니게 됐다.
이렇게 많은 변화를 겪은 나를 보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오히려 태어났는데,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완벽한 위치의 아이였으면 어땠을지.
물론 윤택한 삶을 살고, 누리고 싶은 것을 모두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도장 깨기'의 맛은 겪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놀았을지언정 '사람 사는 세상'은 겪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주상절리에 비교한다.
풍파에 깎이고 또 깎이지만, 멀리서 보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존재.
나는 앞으로 또 깎이고 깎여나갈 일 투성이겠지만, 견디고 견디다 보면 더 멋진 사람이 돼있지 않을까.
그래서 또 다른 결핍이 찾아오더라도, 막막해하기보다는 "이겨내보지 뭐!" 하는 정신으로 임할 예정이다.
결핍은 우리의 힘
이겨내면 그만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