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다.
본가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는데, 그마저도 약속이 있을 때 가는 편이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진 않다.
그래서인지 본가에 가면, 내가 왔을 때 물어보려고 그동안 쌓아두셨던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신다.
가장 많은 질문은 핸드폰 조작 방법이다.
스크린 캡처는 어떻게 하는지, 키보드는 더 크게 할 수 없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한다.
요즘은 특히 HTS를 다루는 방법을 자주 물어보신다.
내게는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일들이 부모님께는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된다.
문제는 한 번 알려드린다고 바로 익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알려드렸던 내용인데 다시 물어보시는 경우도 많다.
반복해서 설명드려야 그나마 따라 하시는데, 그 과정에서 답답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래도 절대 짜증은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인지라 가끔은 “저번에 알려드렸잖아요-” 하고 무심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꼭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순간이 후회된다.
모르셔서 물어보신 건데 조금 더 친절하게 알려드릴걸,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후회하고 있을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이럴 때 짜증을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모님을 ‘육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어른들이지만, 적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순간만큼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마음으로 대하면 된다.
나에게는 두 명의 조카가 있다.
두 살, 네 살이라 한창 활동적이고 호기심도 많은 나이다.
겉잡을 수 없을 때가 많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도 많이 한다.
나에겐 두명의 조카가 있다.
2살, 4살이라 한창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이다.
겉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조카들이 사고를 치던 이상한 질문을하던 절대 짜증내지 않는다
하지만 조카들이 사고를 치거나 엉뚱한 질문을 해도 나는 전혀 짜증을 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짜증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짜증이 안난다.
그저 너무 귀엽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호기심이 많고, 아직 모르는 게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부모님께도 그대로 대입하면 된다.
부모님께는 스마트폰도, 빠르게 바뀌는 기술도 모두 새로운 세계일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부모님께는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링크를 눌렀더니 보이스피싱으로 몇천만 원을 잃었다더라”, “자녀를 사칭한 사람에게 돈을 송금했다더라” 같은 뉴스까지 들으면, 어려운 것을 넘어 두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어릴 적에는 부모님에게 수없이 많은 것을 배웠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도 부모님은 대체로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사고를 쳐도 묵묵히 수습해주셨고,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할 때마다 옆에서 하나씩 알려주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말이면 놀이공원 같은 새로운 장소에 데려가 주셨고, 새로운 물건이나 전자기기를 접하게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셨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하는 세상에서, 부모님도 그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실 부모님을 위해, 함께 카페에 가서 주문하는 법을 알려드려야 한다.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하는 법, 길을 찾는 법,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법도 천천히 설명해드려야 한다.
우리 역시 부모님의 그런 배려와 교육 덕분에 지금만큼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부모님을 일부러 대형 쇼핑몰에 모시고 가서 새로운 문화나 음식, 제품을 함께 구경한다.
보통 나가기 귀찮아하시는데, 예전에는 두고 혼자 다녀왔다면 요즘은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간다.
새로운 제품들, 번쩍이는 쇼핑몰을 보면서 부모님은 “세상이 정말 좋아졌구나” 하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으면 모시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부모님께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사실이 조금 죄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부모님 덕분에 세상을 알게 되었고, 세상의 이치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연로하신 부모님에게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을 육아하자.
새로운 것을 알려드리고, 새로운 경험을 함께 만들어드리자.
부모님은 그 경험 속에서 얻는 기쁨으로 남은 시간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보내실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