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여행지,
파리에서 무려 보름이나 머물렀다.
도시 한 군데에 이틀이면 오래 할애한다, 깊게 적은 수의 도시를 둘러보기보다는 얇게 많은 도시를 '훑고'가는 식의 여행이 판친다.
아침에 도착해 야간 타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무슨 사연이 있길래 파리에 그렇게 오래 있느냐 물어본다면,
"전공이 불문과거든요."
라는 대답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나는 한국인마다
"우와, 그럼 불어 잘하겠네요~ 부럽다."
할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차라리 불문과라고 하지 말걸ㅠㅠ'
후회도 해보지만, 이미 상대는 내가 '한 CF에서 로밍된 영상폰으로 여자 친구 대신 멋지게 불어로 음식을 주문하던 한 남자'만큼의 실력이 되는 줄 아는듯한 눈빛이다.
기차표 창구에서, 그래도 학교에서 배운 불어 써먹겠다고,
"Je veux... " (I want to...) 하면서 운을 떼긴 했지만, 영 말이 떨어지지 않고 초 난감한 표정 지어가며 "umm... umm... ", 만 연신 뱉어내던 내게, 그 영어 하기 싫어한다던, 영어로 물어봐도 불어로 대답한다던 그 프랑스인 직원이 오히려 웃으며
"Do you speak English?"
했던 굴욕적인 사건.
민박집에서 만난 사람들과 프랑스 레스토랑 갔을 때,
그나마 가장 용감한 오빠분께서 웨이터와 영어가 안 통해, 지배인과 직접 영어로 정말 어렵고도 서툴게, 총 여섯 명의 주문을 하고 있는 동안, 나름 불문과인 나는... 메뉴판에 얼굴을 묻고,
'이 단어 어디서 본거 같긴 한데,,, 발음이 뭐였더라?' 입에 자물쇠 채우고 조용히 있었던 민망한 상황.
그리고 어렵게 주문을 마치고,
"야, 너 불문과라며~ 불어 못해?"
하는 구박을 받았을 때,
"영어 10년 배워도 버벅거리는데, 대학 와서 처음 불어 배웠는데, 얼마나 하겠어요?"
하면서, 쓴웃음 지으며 대꾸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사건.
빵집에서 "un baguette"라고 했다가 직원이 "une baguette"라고 고쳐주었을 때,
(참고 : 불어의 모든 명사는 남성/여성의 성을 지니는데, 남성 앞에는 un이라는 부정관사를, 여성 앞에는 une이라는 부정관사를 사용한다. 바게트의 경우 여성명사로서 une을 사용한다. 이 명사가 남성 명사인지, 여성명사인지 나올 때마다 외우는 수밖에 없지만, une baguette의 경우 예문으로도 빈번하게 사용하는 매우 쉬운 표현이다)
그렇게 난, 결국 프랑스에서 당당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불문학도로 보름 동안 파리를 누볐다.
중간중간 간판이나 포스터에서 보이는 쉬운 불어 표현들을 더듬더듬 읽고 해석하면서 속으로 혼자 좋아하면서. 여기저기 들리는 본토 불어 발음과 비교해 스스로도 민망한 나의 저질 불어 발음을 반성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