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여행을 하기로 했을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사람이었다.
'거의 다 친구들끼리 올 텐데... 나만 유럽에서 혼자 왕따 놀이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
하지만 일단 혼자서 여행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친구들끼리 왔다고 하더라도, 혼자 온 여자아이에 대한 놀라움과 그들 본연의 착한 심성으로(여행 중 만난 사람 중에 특별히 악마의 자식이란 생각이 들 정도의, 나쁜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파리의 민박집에 지내며 같은 방을 쓰면서도 어색하게 인사만 나누고 식사 때가 되면 서먹하게 서로 밥만 먹던 사이였는데, 시내 구경 중 우연히 만나자 너무 반가워하며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 학교는 어디냐, 어쩌고 저쩌고... 그동안 서로 어색하게 지낸 며칠이 무색할 정도로 "급" 친해진 경우가 있었다.
물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여행하는 경우에는 특히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므로, 항상 친구들을 보내야 했던 나는(무려 보름 동안 한 민박집에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정작 내가 떠나게 되자 어찌나 어색하고 아쉽던지) 이제 좀 친해졌다 싶으면 헤어지고, 그러면서 늘어나는 다이어리 속 사람들의 이메일 주소를 보며 그나마 위안을 해야 했다.
특히 혼자서 여행하는 분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먼저 말 걸어주겠지, 하는 기대심을 버리고 먼저 간단한 인사 한 마디 건넨다면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반가워하는 상대의 반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여행에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정해져 있다.
혼자인 경우 : "혼자 오셨나 봐요? 대단하네, 여행 며칠 째세요? 어디 어디 가셨어요?"
여러 명인 경우 : "친구들끼리 오신 거예요? 재밌겠다, 안 싸워요? 며칠 되셨어요? 어디 어디 가셨어요? 한국 그립죠?"
생각보다 '여행'관련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 편이지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도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한국인을 만나며 뭐랄까, '스치듯이'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서로 가야 할 길 가면서 다시 헤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그런 만남과 헤어짐은 만남의 경우 지나치게 어렵거나 무겁지 않다. 대부분 한국인은 한국인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기 때문에(작년 여름의 경우 버켄스탁에 원피스, 선글라스를 착용한 동양인의 경우 십중팔구 한국인) "한국인이신가 봐요, 어디 가세요?" 하는 식의 가벼운 말을 건네다 보면 여행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말동무를 하게 된다.
헤어짐의 경우 그 만남의 기간이 그리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우연히 혼자 여행 중인 멋진 남자를 만나서 같이 동행하는 로맨스를 꿈꾸기도 했지만... 역시 현실은 냉혹했다) 헤어질 때 "여행 잘하세요, 한국에서 봬요" 하는 식의 가벼운 인사를 통해 또한 그리 슬프거나 아쉽지만은 않은 느낌이 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한 무리의 사람들과 애플 바인을 마시며, 여행에 관해 이것저것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서로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만난 한 언니는, 하루 동안 같이 프라하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생각해보니 같이 찍은 사진도 없고, 언제 그곳을 떠났는지도 몰랐다.
이탈리아의 기차역에서 만난 언니는 지연되는 이탈리아 기차를 함께 욕하면서,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와 본인은 오스트리아로 독일어 연수를 왔는데, 우리 학교가 방학 때마다 이런 어학연수를 지원해준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기차가 오자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인터라켄에서 만난 한 오빠는 내가 재학 중인 학교와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왠지 친해져서 군대 다녀와서 바로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 중이고 지금은 잠깐 여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냉동피자를 프라이팬에 데워먹기도 했다. 숙소에 나타난 바퀴벌레 때문에 함께 질겁하기도 했던 분.
잘츠부르크 역 앞에서 만난 오빠는 내가 혼자 지도를 보면서 헤매는 것을 보고 함께 미라벨 정원을 찾아주고는 간단히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기도 했는데, 후에 로마에서 트레비 분수 야경을 보고 돌아오던 만원 버스 안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또 프라하에서 만난 뉴질랜드로 이민 간 한국인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10년 넘게 뉴질랜드에서 살아서 한국말이 부족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나중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학을 가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미 두 편정도 써둔 시나리오가 있다며 본인의 미래 꿈까지도 처음 보는 내게 서슴없이 이야기했던 친구.
역시나 프라하에서 만나 함께 재즈밴드 공연을 보러 갔던, 늦은 나이에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고 파리에서 어학공부 중이신 두 언니들.
파리에서 함께 에펠탑 야경을 보러 갔던 너무 솔직하고 재미있었던 대구 출신 언니 두 분과, 일본인 친구, 그리고 노트르담에서 무려 300유로를 잃어버리고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한 언니.
한국에 들어가면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파리 민박집에서 같은 방 쓰던 언니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고, 더 알고 보니 내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 친구의 고등학교 후배였던 아이.
로마에서 만나 함께 파시 젤라토를 먹으며 콜로세움 야경을 함께 보러 갔던,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일주일 휴가를 받아 이탈리아에 왔다던 언니.
그리고 친절했던 많은 한국인 민박집 주인 분들.
그 외에 이곳에 다 나열하기도 힘든,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나는 그곳까지 갔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