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불리한 자리에서 판을 짠다는 것

“불가능에 도전한 군필돌 전략서”

by 상구의 일기장


연락이 왔다!

기적처럼.




수십 곳에 메일을 돌렸고,

그중에서 단 3곳만 답장이 도착했다.


지원서를 보낸 당사자가 군인이라는 신분이고,

게다가 전역까지 1년 이상 남아 있는 이등병·일병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나는 답장이 온 곳부터 오디션 스케줄을 잡기 시작했다.


이등병의 ‘신병 위로 휴가’, 일병의 ‘1차 정기 휴가’,

내게 주어진 휴가는 곧 오디션 기회였다.


연락 온 회사의 오디션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휴가를 더 알차게 쓰기 위해, 현장 공개 오디션도 수소문해서 응시하러 갔다.


그렇게 휴가 일정은 오롯이 오디션 스케줄로 가득 찼다.




그중 한 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연락이었다.


사실 그 회사는 이미 2012년에 5인조 보이그룹을 런칭했기에, 나의 기준에 맞지 않아 후보군에서 제외한 곳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선택지는 좁았다.

답장이 없는 게 기본이었고, 한 줄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은 다 붙잡아야 했다.

결국 나는 마음속에서 ‘비현실적’이라 단정했던 항목 위에 커서를 가져다 대고, 전송을 눌러버렸다.

간절함이 앞서면 원칙도 무너지는 법.


“대표님, A그룹의 새 멤버가 되고 싶습니다.”




어떤 누가, 이미 데뷔한 그룹에 새 멤버가 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낼까.

이 업계에서 멤버 추가 및 교체는 사실상 금기어였다. 그룹이 흔들리는 건 곧 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 길이 아니면,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지원서가 아닌, 전략서를 보냈다.


메일 안에는 내 경력과 더불어, 그룹의 포지션·방송 노출 빈도·보컬 구성·예능 캐릭터까지 하나하나 분석해 정리했다.


•‘메인보컬은 중저음 보이스. 저는 미성의 목소리로 그 보이스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예능 담당 멤버가 부각되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MC/리포터 준비 경험을 통해 예능에 특화된 멤버가 될 수 있습니다.’

•‘학생회장 출신 아이돌, 군필돌이라는 차별화된 키워드로 그룹 홍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현 멤버들은 모두 미필자입니다. 저를 영입하면 그룹의 군백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등등.


군인이 보낸 메일치고는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당돌한 제안이었다.

돌아보면 무모했고, 어쩌면 무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때는 오히려 그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게 답장이 왔다.


“상구 군, 가장 빠른 휴가 날짜가 언제일까요? 한 번 보고 싶습니다.”


눈을 의심했다.

그 회사를 다시 클릭해 봤고, 도메인 주소까지 확인했다.

손끝이 떨리고, 메일창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진짜야…? 이게 진짜야?”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말도 안 되게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서둘러 휴가를 다시 신청했고, 마침내 새 멤버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오늘이 인생이 바뀌는 날일지도 몰라."


회사까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카페에서도 계속 이어폰으로 연습곡을 들으며 입으로 달달 외웠다.


그렇게 군대에서 새롭게 준비한 레파토리를 보여드릴 시간이 되었다. 노래와 춤, 그리고 짧은 자기소개까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혼신을 다해 보여드렸다.


대표님은 내 퍼포먼스를 다 지켜본 후 말씀하셨다.


“지원자가 소속 가수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겠다는 메일을 보낸 건 처음 봤어요.

그 당당함과 성의에, 답장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


“나는 상구 씨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지금 계약서를 쓰는 건 본인에게 불리할 거예요.

전역까지 1년이 남았으니, 반년 단위로 다시 찾아오세요.”


그렇게 지푸라기 하나가 또 내 손에 쥐어졌다.


이 역시 언제 끊어질지 모를 가느다란 지푸라기였지만, 다른 지푸라기들 보다는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타킹 작가님과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갔다.


군인의 신분을 벗어난 뒤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코너를 기획했다.

아이돌 도전의 서사를 곧바로 캐스팅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전역 후 홈쇼핑’이라는 아이템을 만든 것이다.

군대라는 한계 속에서도, 작은 희망 하나라도 붙잡고 싶었다.


기획안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예비 군필돌 이상구, 전역 기념 홈쇼핑—

지금, 전역 인증 완료! 데뷔 준비 완료!”


그 기획은 단순히 웃기기 위한 게 아니었다.

군대에서도 절실히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걸,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코너 구상은 군 복무 중 거의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 나는 작가님께 기획안 일부를 보내 피드백을 받았다.

기획 노트의 페이지들은 손글씨와 낙서로 빼곡했고,

중간중간 “이건 좀 과한가?”, “여기선 터질 수 있을까?” 같은 메모가 촘촘히 자리했다.


목동 SBS 사옥을 직접 찾아가 오프라인 미팅도 진행했다.

스타킹 작가님은 기획안을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상구야, 진짜 너 아니면 이런 거 못 짜.”


작가님은 늘 나를 응원해 주셨다.


“상구가 진짜 열심히 하니까, 내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그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이 났다.

비록 기획은 방송으로 실현되진 못했지만, 그 노트는 지금도 내 책장에 조심스럽게 꽂혀 있다.

그 노트는 당시 내게 가장 절박했던 꿈의 형태였고, 노트를 붙잡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도 다시 누군가의 ‘캐스팅 후보’가 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집착은 조금 애틋하다.

당시 나는, 방송 하나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집착을 들어주고 도와주려 했던 작가님, 그때도 지금도 너무 감사할 뿐이다.




그러니 휴가는 늘 부족했다.


그래서 부대 장기자랑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포상휴가는 내게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었다. ‘꿈을 위한 연장전’이었다.


부대 행사 공지가 뜰 때마다 나는 조건을 살폈다.

‘1등: 포상휴가 5일’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시작됐다.


‘이건 무조건 나가야 한다.’


때로는 춤, 때로는 노래, 때로는 개그까지 내가 가진 모든 재능을 총동원했다.


“이상구 일병님 또 준비하세요?”

“응. 나 오디션 보러 가야 돼.”


후임들은 어떻게 매번 나가냐며 놀라 했지만, 나는 진지했다. 하루라도 더 외박을 나갈 수 있다면, 하루라도 더 연습생처럼 살아볼 수 있다면, 그건 내게 아주 중요한 승부처였다.




어느새 계급은 상병으로 올라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하루였다.

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후임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상구 상병님! 행정반에서 전화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순간 멈칫했다.

부모님일까, 아니면 무슨 긴급한 일이 생긴 걸까.

서둘러 복도 끝 행정반으로 향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댄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구 님, 안녕하세요. C엔터테인먼트입니다.

지난번 오디션 결과 말씀드리려고요.”


그 소속사 이름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당시 답장이 온 세 곳 중 한 곳이었다. 휴가 때 2차 오디션을 본 뒤 몇 주간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실상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그런데.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 다음 휴가 때 계약하자고 하시네요.

그리고 휴가 나오실 때는 주말 일정에 맞춰 트레이닝도 병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자,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정말…? 군대에서 최종 합격?”


작게 중얼거리듯 되뇌며,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신기하면서도, 뭔가가 벅찬 감정이 가슴 안쪽에서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환경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실질적인 기회를 잡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그간 몇 번의 최종 합격 경험은 있었지만, 기회가 데뷔까지 닿지 않았었다. 늘 기회도 운도 내 차지가 아닌 듯 싶었다. 그래서 항상 억눌렀던 내 감정.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이 회사는 실제로 데뷔조를 구성 중인 단계였고, 이미 유명한 선배 가수들이 활동 중이며, 방송 스케줄도 명확히 잡을 만한 회사였다.


이제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데뷔’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눈앞에 또렷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전역이 많이 남았음에도, 매 휴가를 주말 일정에 맞춰 소속사에서 연습생 트레이닝을 받았다. 짧고 끊어진 리듬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가능한 최선을 끌어냈다.


부대 안에서는 상병 이상구였고, 밖에 나가면 연습생 이상구였다.

군번줄을 찬 몸으로 연습실에 들어서면, 눈빛부터 다시 정비했다. 복귀 전까지, 나는 ‘아이돌 후보’였다.


부대로 돌아오면 곧바로 구보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몰아쉬면서도, 머릿속은 연습곡의 벤딩 포인트를 되짚었다. 생활관에서 군화를 닦던 손으로는 지난 휴가에 배운 안무의 손끝 각도를 되새겼다.


한쪽은 흙먼지 자욱한 연병장의 땡볕 아래였고,

다른 한쪽은 음악이 흐르는 연습실의 조명 아래였다.

현실은 정반대였지만, 나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단함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절박함이었다.


이번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었고, 이제는 다음 기회도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붙잡은 건 지푸라기가 아니었다.

돌다리를 두드릴 시간도 없이, 당장 뛰어야 하는 절벽 위에서의 판이었다.


가장 불리한 자리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판을 짜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언제나 내 방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전역을 몇 달 앞두던 때, 모든 것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이른바 “휴가 시즌 한정 연습생”으로 살아가며 트레이닝도 점점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이 길 끝에 데뷔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던 그 무렵이었다.

이사님이 퇴근 준비 중인 나를 조용히 불렀다.


“상구는 전역하면 주말반 그만하자.”


나는 얼어붙었다.

‘그만? 그게 무슨 뜻이지?’




그때는 몰랐다. 그 뒤로 펼쳐질 또 다른 국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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