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느린 위치에서, 멀리

“다시 꿈을 전송합니다”

by 상구의 일기장


그렇게 설레는 첫 방송 녹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자대로 복귀했다.

부대에 돌아와 주어진 군복무에 충실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오직 본방송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몇 월, 며칠 방송이지?’

‘방송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못생기게 나오면 어쩌지?’


설렘 반, 두려움 반.

마치 매번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는 그 마음 그대로,

하루하루가 지났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송 날.

저녁 점호 전, 생활관 TV 앞에 병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부대에 내가 나오는 날이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상구 나온다며?”

“이상구 이제 진짜 연예인이네”

선임들의 농담 섞인 기대에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지만, 속은 이미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등을 곧게 펴고 앉았다.

그러는 사이 본방송은 시작되었고, 매 장면마다 숨이 멎을 듯한 긴장이 밀려왔다.

그렇게 내 차례가 시작되었다.


‘나, 잘 나올까? 아니면…?’


그런데 화면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고,

한 컷, 두 컷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내 심장은 철렁하고 뒷목은 서늘해졌다.


‘어? 이 부분은 왜 빠졌지?

내가 녹화 때 잘했던 그 대사도 없고,

춤은… 설마 다 잘린 건가?’


기억 속에서 가장 빛났던 장면들은 화면 속 어딘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내 얼굴은 몇 컷, 노래는 단 몇 소절만 나갔다.

무대를 꽉 채웠던 그 열정이, 안 보이는 편집점 너머로 사라진 셈이었다.


그 순간 누가 뒤에서 “오, 야 그래도 나왔다!”라고 말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입꼬리는 애써 올렸지만, 속은 쉬이 복구되지 않았다.


그렇게 TV 앞에 앉아 마지막 화면이 지나갈 때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다음 날 아침, 생활관은 평소처럼 분주했다. 한 선임은 내게 와서 툭 던졌다.

“야, 너 어제 나왔더라? 근데 진짜 조금밖에 안 나왔던데?”

장난처럼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왠지 뼈가 느껴졌다.


“그거 다 편집된 것 같습니다. 원래 더 나와야 했는데...”

대꾸하면서도 속은 타들어갔다.


또 다른 선임은 슬쩍 다가와

“그래도 나왔잖아. 방송 타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멋지더라.”

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관심을 가져준 것 자체가 고마웠다.

‘짧았다’는 말도, ‘멋졌다’는 말도—어쨌든 날 봐줬다는 뜻이니까.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고,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분명했다.


그래도 내가 이 프로그램에 도전한 가장 큰 이유,

‘아이돌 도전 이야기’의 그 서사는 담겨 있었기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방송 날짜가 밀리면서 분량 제한이 생겼다고 했다.

나처럼 대폭 편집된 팀도 있었고, 아예 통편집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작가님은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최대한 많은 분량을 넣어주려고 애썼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방송 이후, 나의 일상에는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부모님께 연락하기.


“아빠, 혹시 기획사에서 연락 온 거 있어?”

“작가 누나한테는 연락 온 거 없어?”


내가 방송에서 했던 공개 구애에 기획사들이 반응하지 않았을까, 마치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처럼 연락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당시에는 영향력이 컸고, 스타킹 출신으로 연예계에 진출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국 6개월 가까이 부모님께 연락하며 오히려 부모님의 안부보다 러브콜 여부를 묻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복잡한 감정이 쌓였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불안과 초조함도 커졌다.




그러던 와중, 2012년은 보이그룹 데뷔의 전성기였다.

그동안 내가 떨어졌던 팀들이 하나 둘씩 데뷔했고, 심지어 오디션장에서 마주쳤던 친구들도 데뷔하기 시작했다.


그런 화면들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음악방송을 피하게 되었다.

예전엔 그 무대를 꿈꾸며 빛나는 눈으로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제는 보기만 해도 마음 한켠이 쓰라렸다.


그 무대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지금 당장 전역할 수도 없었고, 입대를 무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멈춰 있지 말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가장 먼저, 오디션 레파토리부터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입대 전 연습했던 곡들은 제외하고, 현재 인기가 많고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곡들로 새롭게 연습하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다고 트렌드에 뒤처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차트 1위를 달리던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가 내 새로운 오디션 레파토리가 되었다.


하지만 군대의 연습 환경은 너무 열악할 수 밖에 없었다.

휴대폰은 물론 노래 연습을 위한 오디오 기기는 사용할 수 없었고, 개인적으로 TV 음악을 자유롭게 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래는 오직 부대 내 노래방에서만 연습할 수 있었다.

정식 연습실은 없었기에, 노래방이 그나마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틈날 때마다 노래방을 찾아가 최대한 노래 실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춤 연습은 더 큰 고민이었다.

안무 영상을 보거나 박자와 흐름을 익힐 기회도 부족했고, 춤을 연습할만한 공간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래서 자율정비 시간에 생활관 TV에서 나오는 음악방송을 보며 흘깃흘깃 안무 동작을 눈으로 익혔다.

그마저도 원하는 타이밍에 방송이 나오는 게 아니어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무조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외운 가사와 동작은 무반주로 따로 연습했다.

결국 내가 찾은 최적의 연습 장소는 — 물품들이 적재된 탕비실.


처음엔 어색하고 민망했다.

‘내가 지금… 이 좁은 탕비실에서 춤을 춰야 하나?’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간절함이 머뭇거림을 이겼다.


몇 번의 민망한 상황도 있었다.

하루는 문이 덜 닫힌 줄도 모르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는데, 복도를 지나가던 후임이 깜짝 놀라 “헉… 이상구 이병님 뭐 하십니까?”라고 묻던 일도 있었다.

나는 웃으며 문을 닫았지만, 속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일을 계기로, 문을 꼭 닫고 시간을 정해 매일 30분 이상 그 공간에서 연습을 했다.

부대원들이 “이상구 이병 또 탕비실 간다~” 하며 웃었지만, 나에겐 그곳이 절박한 연습장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동작이 몸에 익으면, 혼자 TV를 볼 수 있는 시간에 다시 음악방송을 틀어 박자와 흐름을 맞췄다.


그 순간만큼은 군인이 아니라, ‘연습생 이상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것이 있었다.

바로 “메일 돌리기.”


공개 오디션 현장에는 당장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동안 잠시 멈췄던 온라인 지원을 군대에서도 재개했다.


그래서 나는 자율정비 시간이 되면 군대에서 유일하게 외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싸지방(사이버 지식정보방)으로 향했다.


장병들이 개인 SNS를 둘러보거나 재밌는 영상들을 찾아보는 그 장소는 늘 인기였다.

그 틈에서 나는 마우스를 붙잡고, 나를 받아줄 회사를 찾기 시작했다.

옆자리에서 피식 웃던 선임이 물었다.

“상구 진짜 전역하자마자 아이돌 할 거야?”

나는 대답 대신 화면을 더 빠르게 넘겼고,

그 질문에 답하듯 더 치열하게 준비했다.


그곳에서 지원할 수 있는 소속사 리스트를 새로 구성하고, 지원 메일 주소를 취합했다.


이번에는 더 철저히 분석했다.

최근 1~2년 내 보이그룹을 런칭한 회사들은 제외했다.

이미 그룹이 나온 회사는 당분간 새 팀을 런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겟팅 기준도 명확히 정했다.

이미 데뷔한 걸그룹이 활동 중인 회사를 우선으로 삼았다.

그런 회사일수록 보이그룹 데뷔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았고, 음악방송 출연까지 이어질 확률도 높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데뷔가 아니라, 음악방송 출연까지 보장된 진짜 데뷔를 원했다.




그렇게 리스트업을 완료한 뒤,

이번에는 내 지원서와 이력서를 다시 수정했다.

방송 출연이라는 경력 한 줄이 새로 추가됐으니까.


• 용인시 춤·노래 경연대회 대상

• 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역임

• A 엔터테인먼트 “E 선발대회” 2차 진출

• B 엔터테인먼트 오디션 최종 합격

• C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 D 엔터테인먼트 공채 오디션 본선 진출

• SBS <스타킹> 육군특집 출연


"SBS <스타킹> 육군특집 출연". 그 한 줄이 추가된 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특히 한 회사는, 예전 오디션장에서 만났던 실장님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메일 말미에 ‘실장님, 지난번 오디션장에서 뵈었던 이상구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을 실마리 삼아 다시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또 메일 말미에는 이렇게 썼다.


"저는 군복무 중에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는 연습생입니다. 최근 SBS <스타킹> 육군특집에 출연하여 무대 경험도 쌓았습니다. 군필돌 어떠세요?"


조금은 뻔뻔한 부탁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웃고 넘어가며 읽어주시길 바랐다.


그렇게 수십 곳의 엔터테인먼트에 순차적으로 지원 메일을 보냈다.


‘이 한 통이, 내 전역 이후의 길을 바꿔줄 수도 있잖아.’




누군가는 그냥 군인이 보낸 우스운 메일이라고 여길 수 있었겠지만, 나는 화면에 뜬 전송 완료 알림을 보는 순간마다 내가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탕비실에서의 그 30분, 싸지방 안에서의 그 10분.

어쩌면 누구보다 느리고 불리한 곳에서, 누구보다 먼저 다시 꿈을 향해 걷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과연, 군대에서 내 꿈이 움직일까?

답장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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