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호스트가 된 이등병, 무대에서 꿈을 외치다

“기회를 팔아라, 나를 팔아라”

by 상구의 일기장


[육군특집 SBS 스타킹, 장병 모집]

그 문구가 눈앞에 들어오는 순간, 멈춰 있던 꿈이 다시 깨어났다.




그거였다.

바로, TV에 나와 내 끼와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무대였지만, 군대 밖에서는 단 한 번도 잡지 못했던 그것.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곳 군대 안에서 그 기회가 찾아왔다. 믿기지 않았다.


참고로, 고등학교 시절에도 ‘끼 많은 학생회장’이라는 소재로 스타킹에 지원했었지만,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이 기회는 마치 나를 위한 특집 같았다.

잊고 있던 꿈이 군복 안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렇게 나는 군대에서 또 다시 오디션을 준비하게 되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어떤 콘텐츠로 나를 표현해야 이 프로그램이 ‘나’를 선택해 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고민이 깊어졌다.


경쟁률은 어마어마할 게 뻔했다.

군대 안에 나보다 출중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게다가 이건 보통의 TV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마술, 개그, 퍼포먼스 등 각양각색의 재능을 다루는 쇼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춤과 노래로만 밀고 나가서는 경쟁력이 부족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이 가장 ‘특별’할지.

중학교 시절부터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어필하려고 노력해 왔던 그 감각. 그 습관과 본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포장하기로 했다.

그냥 ‘재능 있는 장병’이 아니라, ‘보여줄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선택한 나의 콘셉트는 ‘이등병 홈쇼핑’이었다.

왜 하필 이등병이었을까. 왜 홈쇼핑이어야 했을까.


먼저, 나는 실제로 이등병이었다.

갓 입대한 신병 특유의 눈치와 바짝 선 군기—그걸 그대로 활용해, ‘이등병’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상품처럼 꾸며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신병의 어설픔과 패기를 적절히 버무리면, 오히려 사람들의 감정선을 자극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그 상품을 제대로 팔기 위해 꺼낸 무기—

그건, 중학교 시절부터 갈고닦아온 말재주였다.

춤과 노래만이 아닌, 나를 단 1초라도 더 오래 보여주기 위해 MC와 리포터 준비까지 해왔던 내 전략.

그렇게 키워온 역량이, 진짜 무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쇼호스트가 되기로 했다.

이등병 홈쇼핑, 말 그대로 나를 파는 코너였다.


단순히 웃음을 노린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그 속에는 ‘중학교 때부터 가수를 꿈꾸며, 200번이 넘는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내 이야기와 진심을 담았다.

무대 위에 선 이등병, 하지만 그 안에는 꺾이지 않는 꿈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노래와 춤도 그냥 하지 않았다.

단지 재능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등병 홈쇼핑’이라는 콘셉트에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이등병만의 디테일을 한 스푼씩 더했다.


내가 선택한 노래는 ‘빅뱅의 스트롱 베이비’.

노래에 넣었던 한 스푼은 ‘이등병의 하루’였다.

이등병만이 알 수 있는 고충과 이등병의 병아리 이미지를 활용해 원래의 노래 제목을 ‘스트롱 이등병’으로 바꾸고, 가사 역시 그에 맞춰 개사했다.

당시 개사한 가사 중 기억나는 몇 줄은, ‘짬이 점점 차고 있어~’, ‘군기는 바짝바짝’ 등,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식할 수 있게 수정했었다.

또한 노래와 안무를 라이브 하며, 나는 ‘춤추면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춤 역시 단편적인 춤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댄스곡에 군인의 ‘군기’와 ‘패기’를 보여주고자, 군인이라면 매일 아침 하는 ‘국군도수체조’를 가미하여 K-국군 댄스를 창작했다.


그렇게 나는 ‘이등병 홈쇼핑’이라는 콘셉트를, 실제 방송용 콘텐츠로 구체화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디션의 진행 방식은 군대 조직 단위처럼 연대, 사단, 군단, 육군본부 순으로, 거의 4~5차를 뚫어야 했다.


첫 오디션은 연대 단위로 진행됐다.

부대 동기부터 재능 있는 장병들까지, 몇몇의 지원자들 사이에서—

단 한 명. 나만이 사단 오디션에 진출할 수 있었다.


사단 오디션에는 각기 다른 하위 부대에서 올라온 서른 명의 참가자가 모였고, 연대 단계를 통과한 만큼 실력도, 개성도 강했다.

이 시점부터는 스타킹 작가님이 직접 현장 심사에 참여했고, 나는 내가 준비한 ‘이등병 홈쇼핑’을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


단 두 장뿐이었던 군단행 티켓.

그중 하나는 내 몫이었다.




하지만 군단 오디션의 문을 열자마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전국 각지의 수십 개 사단에서 올라온 200명에 가까운 장병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무기와 콘셉트를 장착한 채, 이곳은 더 이상 ‘군 오디션’이 아닌 ‘실전 캐스팅 현장’ 같았다.


심사 기준도 달라졌다.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누가 더 방송에 어울리느냐가 중요했다.

무대 위에서 튈 수 있는 사람, 화면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팀을 이뤄 지원했지만, 나는 혼자였다.

혼자서 모든 기획과 연출, 퍼포먼스를 준비해 왔기에, 제작진은 유사한 장르의 참가자들과 나를 한 조로 묶었다.


그 순간, 불안이 몰려왔다.

‘혹시 나랑 이 분을 묶어서 하나의 코너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짜놓은 전체 흐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머릿속은 온통 계산과 시뮬레이션으로 뒤엉켰다.


하지만 곧 다짐했다.

“흐름이 무너지더라도, 결국은 나의 이야기로 설득할 수 있다.”


다행히, 제작진도 그 진심을 알아봐 주었다.

‘이등병 홈쇼핑’은 단독 코너로 유지되었고, 나는 무사히 군단 오디션을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육군 본부 오디션.

군단 오디션에서 선발된 인원들이 합숙을 하는 형태였다.

실제로 작가님들이 수시로 와서 우리들의 콘텐츠를 확인했고, 중간에 낙오되는 분들도 있었다.


합숙은 생각보다 훨씬 긴장감이 높았다.

다른 참가자들의 연습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정도로 다들 열심히 준비해 왔구나’ 싶은 감탄과 동시에 묘한 경쟁심도 들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까지 준비해 온 걸 믿자. 마지막까지 내 색깔을 잃지 말자.’


그때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준비한 ‘이등병 홈쇼핑’ 코너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무언가 한 스푼을 또 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제작진분들은 사단 오디션 때부터 나의 똑같은 레파토리를 계속 봐왔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한 스푼은 바로 ‘시각적 임팩트’였다.

내가 기획한 콘텐츠를 시각적으로 더욱 명확하게 전달하고, 무대들이 더 재미있을 수 있도록.

그래서 합숙 기간 동안 소품과 의상 준비에 매진했다.


예를 들어 모두가 정해진 군복만 입어야 했지만, 나는 내 군복에 노란 견장을 달고, 스마일 배지를 붙였다.

누가 봐도 이등병이라는 걸 알 수 있게. 이등병 시그니처는 나만 가져갈 수 있게.


또 노래 가사에 맞춰 소품을 준비해 가사마다 그 소품들이 마술처럼 나오게 세팅했다.

예를 들어 ‘PX’라는 가사가 나오면 PX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 나오거나,

‘이등병이 걸레를 열심히 빤다’ 하면 손목에 숨겨져 있던 수건이 등장하는 식으로.

이렇게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이 밖에도 정말 다양한 소품들을 준비했다.

여기까지 와서 떨어질 순 없잖아?




52만 명의 육군 중 단 10팀만이 설 수 있는 방송 무대.

결국 그 명단 안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드디어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팀이 아니라 솔로로.

치열하게 준비한 만큼 정말 뿌듯했다.




그렇게 녹화 준비를 마무리할 즈음, 작가님이 그날 출연하는 패널리스트를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샤이니, 브레이브걸스, B1A4, 쥬얼리, 씨스타…

어? 씨..스타…?


내가 고교 시절 활동했던 댄스 동아리의 직속 선배가 씨스타의 보라님이었다.

실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방송 소재로 활용하기 좋고, 나의 서사를 더 명확하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하여 곧바로 작가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내가 나오는 대본 분량과 콘셉트는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편집될 일은 없겠다^^’


녹화 당일이 다가왔다.

너무 떨리고 정신없어서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우리는 합숙하던 부대에서 한 대의 버스를 타고, 새벽같이 촬영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SBS 등촌동 공개홀.

대기실에서 각자 필요한 소품들을 풀고 한 명씩 리허설을 시작했다.


실감이 안 났다.

’내가 리허설을 하다니. 그것도 SBS 공중파 녹화 무대라니.‘


난생처음 메이크업도 받게 되었다.

방송국 분장팀이 직접 내 얼굴의 점 하나, 여드름 하나까지 방송에 잘 나오도록 정성껏 손을 봐주었다.

또 핀 마이크도 착용했다.

노래방에서 핸드 마이크만 쥐어봤던 내가, 무대 위 가수들이 착용하는 그 마이크를 달았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연예인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도 리허설을 시작했다.

솔직히 매우 떨렸다. 현장에는 패널과 관객도 없었고 제작진 분들만 계셨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준비한 것을 모두 보여줬다.


“최강 용사~ 킹! 안녕하세요! 이등병 홈쇼핑의 쇼호스트 이상구입니다!”

“빠밤! 오늘 제가 판매할 상품은 바로 저, 저인데요!”


입으로 낼 수 있는 효과음이란 효과음은 다 내며 코너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았다.

그런데 중간중간 쏟아지는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PD님들과 작가님들의 나를 우쭈쭈 하는 응원이었다.


그렇게 나는 떨면서도 리허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응원 덕분에 ‘내 코너가 정말 재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본방송에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본 녹화 시작 전,

당시 MC였던 이특, 박미선, 붐님이 오셨고,

출연 예정이었던 아이돌 패널 분들도 하나둘씩 도착했다.


와… 주먹만 한 얼굴에, 어찌나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쁘던지.

‘이런 분들이 내가 꿈꾸는 아이돌을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주눅이 들었다.


그렇게 본 녹화가 시작되었고, 거의 24시간 가까이 녹화가 진행되었다.

내 차례는 마지막쯤이어서 오랜 기다림 끝에 녹화에 들어갔다.


리허설 때처럼 정말 당차고 자신감 있게 내가 준비한 무대들을 모두 보여줬다.

다행히 노래하면서 춤추는 것도 음이탈 없이 잘 해냈고, 소품들도 실수 없이 꺼내 들었다.

홈쇼핑의 그 긴 멘트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물 흐르듯 진행했다.


그리고 녹화의 메인 포인트였던 씨스타 보라님과의 인연 이야기!

까마득한 후배라 나를 모르셨겠지만, 녹화 때 먼저 말을 꺼내주셨다.


“이상구 이병님, 혹시 저 모르세요?”


“네! 알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 어떻게 아는 사이지?)


“아, 이상구 이병님 저의 댄스 동아리 후배였거든요.

그때도 가수의 꿈을 향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군에서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그렇게 나는, 씨스타 보라님의 동아리 후배로 소개되며 전 국민에게 얼굴을 알렸다.


마지막에는 직접 준비한 플랜카드를 들었다.

플랜카드에는 아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역 날짜 = 2013년 9월 19일”

“가수 지망생 이상구에게 언제나 연락 주세요.”

“이제는 방송 관계자 분들에게 저를 판매하겠습니다.”


PD님의 OK 싸인이 떨어졌고,

길었던 두 달간의 도전은 아쉬움 하나 없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군에서도 아이돌을 꿈꾸고 도전하는 나의 이야기.

끼를 보여줄 수 있는 ‘이등병 홈쇼핑’ 콘텐츠.

씨스타 보라님의 댄스 동아리 후배라는 서사.

마지막으로 나의 소구 포인트였던 캐스팅을 위한 메시지 전달까지.


그리고 무대를 내려오던 찰나, 패널로 있던 모 보이그룹 멤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많이 힘들죠? 할 수 있어요! 응원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응원이었다.

그냥 내려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와서 응원을 해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그 한마디가 또 나에게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스타킹 제작진 분들이 준비한 또 다른 선물.

녹화를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오니 부모님이 계셨다.

부모님이 오실 줄 몰랐는데, 정말 깜짝으로 오셔서 내가 녹화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셨다.


이등병에게 엄마, 아빠는 얼마나 그리운 존재일까.

눈물이 왈칵 날 뻔했지만 꾹 참고 부모님을 안아드렸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께 나의 꿈에 대한 도전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었다.




나는 무대 위에 섰고, 군복 안에 묻혀 있던 꿈은 핀 마이크와 함께 되살아났다.


스타킹 무대는 아이돌 데뷔가 아니었지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꿈을 이룬 TV 방송 데뷔 무대였고, 그 감정과 공기는 아직 생생하다.


이 출연은 내게 단순한 기회 이상의 의미였다.

정확히, 6년 전 첫 오디션에서 가졌던 희망이 희미해질 즈음, 이 무대가 그 불씨를 다시 밝혀주었다. 아니, 처음보다 더 확고하게 타올랐다.


지치지 않고 계속 도전하라는 의미였을까?




그렇게 나는 다시 ‘군대’라는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나만의 도전을 이어갔다.


이제는 작은 무대라도, 내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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