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군 입대”
가수를 꿈꾸던 나는 왜 군복을 입게 되었을까.
지금 돌아봐도, 그건 나조차 설명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나에게 보컬 학원 수강이란 겨우 쟁취한 기회로, 처음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군대를 권유했던 학원 대표님은 대형 기획사와 깊은 인맥이 있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이 학원 출신 중 몇몇이 대형 기획사로 들어간 사례도 있었다.
나는 면담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상구야, 넌 눈에 힘이 있어. 연기 쪽도 병행해 보면 좋겠고, 타고난 게 있어서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
면담 내내 그는 나를 비행기 태우듯 띄워주었다.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말을 잘한다”, “시선이 간다”—듣기 좋은 말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말들이 나에게는 단비 같았다.
그때의 나는 무대에 대한 확신은 커녕, 오디션 탈락이 일상이 되어 있었기에...
그리고 대표님은 마치 준비해온 듯 마지막 한마디를 꺼내셨다.
“넌 지금 군대를 다녀오면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어. 전역하면 내가 대형 기획사랑 연결해 줄게.”
…군대?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금요? 지금은 더 연습해서 도전해야 할 시기인데? 2년 동안 쉬라고요?’
20살. 아이돌로 데뷔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조급함과 싸우던 시기,
그런 나에게 ‘군대’라는 단어는 터무니없게만 들렸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당시 같이 면담을 받았던 친구는 아직도 농담처럼 말한다.
“야, 그 대표님 아직도 연결 안 해주셨냐?”
나도 웃으며 넘기긴 했지만, 속으로는 늘 궁금했다.
진짜 왜 그러셨을까?
학원 대표라면 수강 기간을 늘려야 이득일 텐데, 왜 나에게 먼저 ‘군대’를 권했을까?
혹시 부모님과 짠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물어보고 싶다.
“대표님,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연결, 아직도 유효한가요?”
꿈에 대한 희망이 점점 옅어지고 있던 나.
수없이 떨어졌고, 연습생으로 지낸 시간조차 데뷔의 문턱을 밟지 못한 채 끝나갔다.
부모님은 말하곤 했다.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니. 포기하는 것도 멋진 일이야.”
친구들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만해. 이 정도 했으면 가능성이 없는거야.”
모두 나를 위하는 말이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6년 가까이 쏟아온 시간과 마음.
지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수없이 무너졌고, 누구보다 많이 좌절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 누군가 던진 한마디.
“넌 군대만 다녀오면 돼. 그럼 내가 연결해줄게.”
그 말은 논리도, 근거도 부족했지만… 내게 지푸라기처럼 다가왔다.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왜 그걸 믿었냐’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조차도 하나의 희망이었다.
나는 결국 그 말에 홀렸다.
돌아보면 참 낯선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다.
그렇게, 그해 12월.
나는 사라질지도 모를 지푸라기를 쥔 채, 훈련소로 향했다.
그 지푸라기의 이름은, 입영 통지서였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날씨는 유독 추웠다.
훈련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정말 잘한 선택일까.’
마음 한켠엔 여전히 가수라는 꿈이 남아 있었고, 이곳은 그 꿈과 정반대의 세계였다.
입소 대기 장소에는 땀과 먼지가 섞인 냄새가 가득했다.
“차렷! 경례!” 조교의 고함과 낯선 구호가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이상구'라는 이름 대신 ‘수많은 훈련병 중 하나’가 되었다.
첫날 밤, 생활관 침상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을 텐데…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그렇게 깊은 후회와 막막함 속에서 군생활 첫 일기를 썼다.
‘나는 오늘부터 군인이다. 하지만, 내 본래의 꿈을 기억하자.’
군대에서의 첫 아침은 달랐다.
집에서는 알람을 몇 번이나 끄고 나서야 겨우 일어났고,
가끔은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긋하게 “일어나야지”라고 말해줘야 비로소 이불을 걷고 일어나던 내가—
이곳에선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기상 나팔이 울리기 전, 이미 복도에선 조교의 고함이 메아리쳤다.
"기상! 기상!"
그 한마디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고, 누구보다 빠르게 침상을 정리하지 않으면 얼차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느긋함은 없고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눈치와 속도가 전부인 세계.
군대는 단 하루 만에 나의 아침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훈련소의 하루는 빡빡하게 흘러갔다.
처음 해보는 사격훈련에서는 총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몰라 자세부터 버벅였고,
총구를 따라 시선을 고정한 채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
귓가를 울리는 총성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밤에는 야간 행군이 이어졌다.
군장을 메고 어두운 산길을 묵묵히 걸었다.
손전등 하나 없이 걷는 그 길은 낯설고 조용했다.
발바닥은 아프고 무릎은 떨렸지만,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또 하나의 훈련이었다.
노래 연습의 짬이 여기서 통할 줄은 몰랐다.
다른 훈련병들이 음정과 박자에 헤매는 사이, 군가만큼은 자신 있었다. 노래는 나의 특기였으니까.
훈련소 기간은 누구나 그렇듯,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배고프게 보냈다.
5주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으며 나는 ‘이등병’이라는 또 다른 이름표를 달았다.
자대에 배치받고 처음 ‘이등병’ 명찰을 달았던 순간이 또렷하다.
명찰을 단 순간 나는, ‘가수 이상구’도, ‘연습생 이상구’도 아닌 ‘이등병 이상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호출은 그렇게 시작됐다.
밥을 먹을 때는 고참이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대답 하나에도 ‘이병 이상구입니다!’라는 관등성명을 먼저 외쳐야 했다.
매일이 비슷한 반복이었고, 하루가 어제의 복사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처음 맡은 일은 생활관 청소였다.
걸레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런 게 내 일상이 되는 건가…’
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내가 원하던 모습과는 참 멀어졌다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주말에 처음 맞은 휴식시간에도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다른 병사들은 편하게 쉬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노트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 또 하루를 일기로 남겼다.
일기 쓰는 시간은 유일하게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글을 쓰는 순간, 군복을 입은 ‘이등병’이 아니라, 내 꿈을 좇는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잊지 않으려고. 꿈이 흐릿해지지 않게 붙잡고 있으려고.
그날 하루가 아무리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해도,
군복 속에 묻힌 마음을 펼쳐놓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그 기록은 내가 다시 나로 돌아가는 작은 통로였다.
그렇게 시작된 일기는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15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힘들 때마다, 방향을 못 잡을 때마다, 나는 다시 일기로 돌아간다.
그 일기장은 내가 가장 오래 의지해온 버팀목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목표와 마음가짐을 잊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작은 등불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 눈치와 규율에 쫓기며 정신없는 한 달이 흘렀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볼 틈이 생겼다.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기보다, 정신을 차렸을 때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데뷔해도 성공하기 힘든데, 그 꿈을 실현해보지도 못한 채 공백기가 생긴다?
2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데… 전역하면 22살, 난 끝이야… 등등.
좌절에 빠지려던 찰나, 나는 우연히 ‘나의 꿈을 뚜렷하게 만들’, ‘본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한 문구를 군 인트라넷에서 발견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를 붙잡고 들어온 이곳에서,
나는 다시, 나를 증명할 문장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