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명분, 본업은 오디션러

"20살 나의 이중생활"

by 상구의 일기장


20살, 대학생이 되면서 나도 여느 새내기들처럼 새로운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입학은 명분일 뿐,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다시 아이돌을 꿈꾸며

대학생이라는 껍데기를 입고,

본업인 ‘오디션러’로 살고 있었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하고 다시 꿈을 향한 도전에 매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칙은 달랐다. 입학 첫 학기는 무조건 다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동아리, MT, 축제 등 대학생활의 모든 것들을 1학년 1학기 때 경험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아이돌을 꿈꾸며 바쁘게 살던 내게는 낯설고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아마 부모님은 내가 이런 대학생활에 적응하면서, 꿈을 천천히 포기하길 바라셨을 수도 있다.


…아, 공부는 열심히 했을까? 당연히 하지 않았다.

나에게 대학교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한 일종의 절차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전공은 ‘행정학과’.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문이었다.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내가 고교 시절 해온 리더십 관련 활동들을 입학사정관제에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대학 공부에는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아마 첫 학기 학점도 2점대 초반이었을 거다.


겉으론 캠퍼스의 대학생.

속으론 매일 오디션장을 전전하는 연습생.


누가 보기엔 평범한 새내기였지만,

내 20살은 매일 ‘명분’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이중생활 그 자체였다.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인터넷에는 가수 지망생들을 위한 오디션 관련 카페들이 정말 많이 생겼고, 나는 그 카페를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을 이어갔다.


정말 많이도 보러 다녔다. 100번의 기록을 깨고 200번을 달성했다.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서 지하주차장부터 로비, 건물 밖 인도까지 줄을 섰던 날도 있었다.

4시간을 기다리다 30초 노래 부른 뒤 ‘다음 분이요’로 끝났던 그 순간들.

200번의 도전에는 그렇게 자잘하고, 처절한 순간들이 셀 수 없이 쌓여 있었다.


내가 봤던 오디션은 단순히 연습생을 뽑는 오디션이 아니라, 명확하게 데뷔조를 선발하는 오디션들이 많았다.

후에 “아, 내가 봤던 오디션이 그 그룹 오디션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될 만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데뷔한 모든 보이그룹 소속사 오디션은 다 거쳤던 것 같다.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오디션이 있다.




첫 번째 오디션은, 난생처음 나를 다이어트의 길로 이끌어 준 오디션이다.

유명 배우들이 대거 소속된 회사였고, 실제로 2012년에 데뷔한 한 보이그룹의 최종 오디션이었다.

계약 직전 단계였기 때문에 오디션을 보는 지원자도 단 세 명뿐이었다.


최종 오디션 당일, 나는 나의 모든 재능을 보여주었다.

한두 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과 소속사의 높으신 분이 즉흥적으로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춤이 끝난 후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던 감각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이전 지원자보다 나를 평가하는 시간이 길었기에,

합격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돌아온 심사평.


“상구 씨, 지금 아이돌을 하기에 외모나 스타일, 체형이 적합하지 않아요. 관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노래나 춤이 아닌 겉모습 때문이라니.

합격의 기대가 컸던 만큼, 탈락의 충격도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도 이해는 간다.

나는 원래 마른 체질이었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동기,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자연스레 늘었고, 원래 잘 먹던 나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냥 살도 아닌, 술살이 정말 오동통했다.


스타일도 문제였다.

그 당시는 2011년, 무슨 멋에 들렸는지 종로 5가 광장시장 구제 코너에서 산 빈티지 옷을 멋지다고 착각하며 입고 다녔다.

벙거지 모자에, 아버지 옷 같은 자켓, 얼굴 절반을 가리는 뿔테 안경까지.


하긴, 그때 유행하던 아이돌 스타일과는 정반대였다.

아니, 유행이고 뭐고… 그냥 ‘아이돌’ 같지 않았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옷장도 정리했다.

벙거지와 뿔테 안경은 서랍 깊숙이 넣었고, 유행하는 아이돌 스타일을 눈치껏 흉내 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지금은 굉장히 유명한...

세계적인 스타 BTS의 오디션이었다.

지금의 하이브 대표, 힛맨뱅—그가 직접 랩 하는 영상을 찍게 만든 유명한 오디션이었다.


2011년 여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보이그룹 2차 오디션...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 앞에는 두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2007년, 원더걸스가 데뷔하기 전 MTV 채널에서 데뷔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됐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이 공감이 많이 됐던 터라 늘 챙겨봤었고, 거기에 나오는 JYP 관계자들의 얼굴도 기억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디션 현장에 그 리얼리티에 나왔던 프로듀서 분이 앉아 계셨다.

아마 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JYP와도 여러모로 연결되어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나는 ‘TV 속 힘 있어 보이던’ 그 프로듀서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 떨리기도 했다.


그렇게 노래를 시작했다. 이지훈과 신혜성의 ‘인형’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2차 오디션이었던 만큼 꽤 많은 소절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 목소리 매력 있는데?”


또 한 번, 나는 ‘합격 시그널’을 느꼈다. 아니, 김칫국을 마셨다.

이어서 질문이 들어왔다.


“혹시 리드미컬한 곡 하나 더 보여줄 수 있어요? 지금 같은 발라드 말고요.”


리드미컬한 노래…?

그때 떠오른 노래는 세븐의 ‘와줘’였다.

바로 부르기 시작했다.


“돌아와 줘 멀지 않다면~ 아직 나를 사랑한다면~”


부르면서 깨달았다.

이건 리드미컬한 노래가 아니라, 세븐이 리드미컬한 노래를 자주 부르는 가수였다는 걸.

실수였다.


결국 노래가 끊겼고, 심사위원은 다시 한번 리드미컬한 노래를 요구했다.

나는 당시 신곡이었던 보이그룹 엠블랙의 ‘모나리자’를 불렀다.

춤을 추거나 들어보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노래였다.


“내게 안녕이라 말하지 마~ 그런 눈빛으로 내게 말하지 마~”


그 순간 잊지 못할 광경을 봤다.


‘TV 속 힘 있어 보이던’ 프로듀서가, 내 목소리가 매력 있다고 했던 심사위원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라는 제스처였다.


그렇게 탈락했다.

솔직히 내 잘못이다. 아이돌을 준비하면서도 댄스곡 가창 준비를 안 했으니…

그 뒤로는 오디션 리스트에 리드미컬한 곡을 꼭 추가하게 됐다.

그래도, 손사래는 너무하셨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오디션은 나에게 영광이었다.

‘내가 이 오디션에 붙었으면 BTS였겠네~’라는건 말도 안 되는 착각이고,

어린 시절 내가 참여했던 오디션에서 그렇게 대단한 그룹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애초에 붙을 오디션도 아니었으니 아쉬움 역시 없었다.




오디션만 본 건 아니다.

기획사에 합격해 연습생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데뷔가 가까워지지 않아, 혹은 보이지가 않아 제 발로 나오거나, 중간에 잘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한 학기를 마무리했고, 부모님과의 약속을 무기 삼아, 아이돌을 꿈꾼 지 6년 만에 드디어 보컬 학원에 등록했다.


곧장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학원을 가기 전 오전에는 용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또 학원은 집 근처가 아니라, SM엔터테인먼트 사옥 근처의 유명 학원으로 정했다.

처음 오디션을 봤던 그 동네.

그때의 기운이 남아 있기를 바랐다.


‘압구정은 좀… 다르겠지?’


처음 레슨방 문을 열었을 때, 좁고 높은 방음벽, 피아노 옆에 기대선 트레이너, 그리고 칠판에 적힌 ‘발성 + 복식호흡’이라는 글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학원생들이 뱉는 고음을 들으며, 한참을 입 꾹 다물고 서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였다.


그 학원에서는 혼자 해오던 연습과는 전혀 다른, 체계적인 기본기와 발성법을 배울 수 있었다.


첫 수업 시간, 나는 발성의 기초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버벅거렸다.

호흡이 새고, 발음이 뭉개지고, 음정은 밀렸다.

트레이너가 내게 말했다.


“상구 씨, 지금까지 혼자 연습하셨죠? 그 느낌부터 빼야 돼요.”


그 말에 멍해졌다.

지금껏 나 혼자 했던 방식이, 오히려 독이 됐던 걸까.


자존심도 상했지만, 처음으로 ‘내가 지금 배워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신세계를 사는 것 같았고, 모든 게 재미있었다.


연습 노트가 찢어질 정도로 빼곡히 메모했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용인-서울 버스에서는 복식 호흡 연습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실력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역시, 배우는 건 다르구나. 돈이 좋긴 좋구나’ 싶었다.


이제, 오디션장에 들어설 때도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었다.

‘한층 더 준비된 오디션러’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원을 다닌 지 3개월쯤 됐을 때,

학원 대표님과의 면담 기회가 있었다.


그때 대표님이 내게 말했다.

“상구야, 군대 다녀올래? 그럼 내가 대형 기획사 연결해 줄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군대? 지금?


하지만 그 한마디에, 나는 모든 걸 미룰 결심을 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무언가에 홀렸던 걸까?


그 결심이 내 인생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게 될 줄은, 그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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