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첫 오디션장에서 희망을 보았다

“상구 씨는 끝나고 남을게요”

by 상구의 일기장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 꿈은 방 한켠으로 밀려났을지 모른다.


그냥 좋아하기만 했다면, 아이돌 가수라는 건 어릴 적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상상으로 끝났을 거다.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정작 어떻게 해야 가수가 될 수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지금처럼 보컬 학원이나 댄스 학원, 오디션을 연결해 주는 아카데미들이 넘쳐나던 시대도 아니었고, 정보도 거의 없었다.

SM, JYP 같은 대형 기획사 몇 군데 외에는 공개 오디션 자체가 거의 없었다. 정보를 찾아도 대부분은 이메일 접수나 지인 소개로만 문이 열려 있었다.




2005년, 중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여전히 가수라는 꿈만 품은 채 그저 좋아하는 노래와 춤을 집에서 따라 하는 정도였다.

그때 내 인생에 큰 충격처럼 등장한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동방신기였다.


어릴 적 H.O.T, S.E.S를 TV로 보며 “와, 멋지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땐 그저 단순한 동경에 불과했다.


동방신기는 달랐다. 처음으로 ‘나도 저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

그들은 내게 처음으로 현실적인 롤모델로 다가왔다.


화면 속 에너지와 무대 위 열정.

나도 저들을 닮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무렵, 정말 또렷하게 기억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동방신기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중 한 멤버가 내게 말했다.


“상구야, 너도 우리처럼 할 수 있어. 도전해 봐.”


정말 이상했다.

꿈이었는데, 그 말이 가슴에 단단히 꽂혔다.

농담도 아니고, 망상도 아니었다.

진심처럼 들렸다.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그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오디션’

그 세 글자를 검색했다.

그 결과, 토요일에 서울 압구정에서 SM 공개 오디션이 열린다는 정보를 찾아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나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14살,

서울은 몇 번 아빠 차 타고 큰삼촌 댁에 갔던 게 전부였다.

게다가 혼자서 서울이라니?

무모하고, 무섭고,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자꾸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어.’


결심은 한순간이었다.



당일 새벽, 몰래 집을 나섰다.

주머니에 쥔 건 버스비 3,000원뿐.

부모님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남행 광역버스에 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갔다.


버스에 앉아 가는 내내 두근거림과 두려움이 엇갈렸다.


‘혹시 잘못 찾아가면 어떡하지?’

‘너무 촌스럽게 보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거, 진짜 내가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으면서도, 왠지 이 한 걸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에 땀이 맺히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강남역에 도착해서도 주변은 낯설고, 건물들은 거대하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멋져 보이는지.

네이버 지식인에서 본 ‘갤러리아 백화점을 등지고 왼쪽으로 쭉 가면 나오는 상아색 건물’을 찾아 버스를 다시 타고 이동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도 없었고, 정말 몸으로 때우는 정보력이었다.



오전 10시에 도착했는데, 오디션 시작은 무려 오후 3시.

그래도 나는 도착하자마자 줄을 섰다.

후기에서 봤다. 몇백 명이 줄을 선다고.


너무 일찍 도착한 거 알지만 그때는 너무 마음이 급했다.

문제는 복장이었다.

2월 한겨울에, 나름 ‘힙하게’ 입는다고 후드 하나에 반바지를 입고 갔다.

그때 유행이 그랬다. (진짜로!)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바람이 반바지 사이로 훅훅 들어오고, 콧물은 줄줄 나고, 목은 얼어서 제대로 소리가 안 나올 것 같고…

내가 왜 그랬을까 싶었지만, 그 추위를 견디며 몇 시간이나 줄을 섰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나는 수백 번 노래 가사를 속으로 읊조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줄이 앞으로 갈수록 마음속 긴장은 더 강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나보다 더 멋져 보였고, 순간 ‘내가 괜히 온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오늘 반드시 나를 보여주고 갈 거야.’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드디어 건물 안 대기 장소로 들어가면서 목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디션 룸에 들어갔다.


10명씩 한 조로 서서 노래를 차례로 선보인 뒤, 마지막 순서로 음악에 맞춰 프리스타일 댄스를 추며 ‘리듬감 테스트’를 받았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던 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말 그대로 “5초 컷”이었다.

누가 노래 한 소절 부르면 “네, 수고하셨어요. 다음~” 하고, 또 “다음~” 이게 계속 반복됐다.

너무 짧았다.


가끔가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노래 한 곡 더 불러 볼래요?” 하면서 추가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외모를 체크하는 ‘카메라 테스트’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기회 받을 수 있을까?’

그 생각만으로 손끝이 저릿해졌다.

그 순간, 조금이라도 더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추위보다 떨림이 더 심해졌다.

나는 영웅재중이 오디션에서 불렀다는 ‘조정현 -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를 준비했다.


왜 그 노래였을까?

어쩌면 나도 동방신기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마음 하나로 목청껏 불렀다.


놀랍게도 심사위원이 노래를 끊지 않았다.


내가 준비한 후렴까지 다 부르고 나니까, 심사위원이 나에게 “한 키 올려서 한 번 더 불러 볼래요?”라고 물었다.


와, 이게 무슨 일이지? 긴장되면서도 너무 신났다.


그리고 한 키 올려서 다시 부르고 나니까, 이번에는 “다른 곡도 있어요?” 해서 이지훈&신혜성의 ‘인형’도 불렀다.


그때 나는 내 안에서 뭔가가 확 깨어나는 걸 느꼈다.

‘아, 나도 통한다. 나도 할 수 있다.’

그 짧은 순간, 내가 무대 위에 있는 것처럼 몰입해 노래를 불렀다.



세 곡을 마친 뒤, 나도 카메라 테스트를 받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마를 까고 좌, 우, 정면을 보여 주고 포즈도 취했다.

리듬감 테스트까지 끝나자, 심사위원이 말했다.


“상구 씨는 끝나고 남을게요.”


그 한마디가 내 심장을 쿵! 하고 때렸다.

그날 오디션이 다 끝날 때까지 한쪽 구석에서 대기했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가장 길게 느껴졌다.


마음속에서는 수백 가지 생각이 오갔다.


‘정말 되는 걸까? 아까 노래는 괜찮았을까?’


한편으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또 한편으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온 신경이 귀 끝까지 곤두서며,

설렘과 긴장이 온몸을 지배했다.



마지막 참가자들이 다 나간 후에 나는 노래 몇 곡을 더 부르고 나서야 진짜로 오디션이 마무리됐다.


밖에 나와 보니 벌써 밤 8시가 넘어 있었다.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하루였다.

500m쯤 떨어진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나를 따라오던 두 명의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돼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늦게 건물에서 나오니까 연습생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질문 하나가 나에게는 정말 큰 기쁨이었다.

아직 합격도 안 했지만, 왠지 벌써 아이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마음속에 선명한 확신이 자리 잡았다.

“내가 정말 첫 발을 뗐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



뭐든 첫 걸음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그날 나는,

이 길을 진짜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오늘을 잊지 말자.

이 감정, 이 떨림, 이 설렘…

다시는 잃지 말자.’


만약 이 오디션에서 철저히 무시당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꿈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 좋게도 누군가 내 노래를 5초 이상 들어주었다.

그리고 “남아 주세요.”라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합격보다 큰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날이 있었기에

그다음의 수많은 도전이 가능했다.




그건 합격이 아니었다.

그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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