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그런 단어는 내 버스카드엔 없다”
첫 오디션에서 맛본 희망은 내 안에 끈기와 집착이라는 걸 심어줬다.
그때 SM 오디션은 300~400명 정도가 몰려드는 꽤 큰 규모였고, 그중에서 가장 잘한 4명을 뽑아 기획사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려 투표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오디션을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 SM 공식 홈페이지 오디션 카테고리에 내 영상이 포함된 4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중 1등은 ‘주장원’이 된다.
이후 주장원끼리 다시 겨뤄 ‘월장원’이 되고,
최종적으로 월장원 12명이 결선에서 겨뤄, 단 한 명의 연습생이 선발된다.
나는 가족, 친구들 할 것 없이 연락을 돌리고 홍보도 하면서 열심히 투표를 부탁했지만, 아쉽게도 주장원이 되진 못했다.
그 첫 번째 오디션은 결과보다 ‘희망’이라는 조각만 남기고 끝이 났다.
그래도 나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당시, Daum(다음) 사이트에 <SM 오디션 카페>라는 곳이 있었다.
오디션 정보나 후기를 올리는 카페가 여럿 있었지만, 그곳은 SM 엔터테인먼트 관련된 정보만 있었다.
내가 첫 오디션을 본 주, 익명의 누군가가 남긴 글 속에 내 이야기가 등장했다.
오디션 후기를 보니 ‘반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분이 기억에 남는다’, ‘왠지 될 것 같다’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 오디션 후기들도 내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 후기는 내 마음에 작은 불을 지폈다.
‘내가 잘할 수 있구나’라는 확신과 함께,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SM이라는 한 우물만 파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더 나은 모습을 오디션 현장에서 보여주는 것.
그래서 그때부턴 거의 학교 가듯 매주 토요일마다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근데 어쩌겠나. 정말 코앞까지 온 것 같았거든.
오디션 줄을 서 있을 때면 속으로 늘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내가 오늘이라도 연습생이 될지 누가 알아. 오늘이 내 마지막 오디션일 수도 있어.’
입은 괜찮은 척, 속은 발등에 불. 누구보다 조급했다.
처음엔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찾느라 쩔쩔맸지만, 어느 순간 그 풍경도 익숙해졌다.
건물도, 길도 익숙해질수록, 마치 내가 이미 그 회사의 연습생이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를 상상하곤 했다.
나름의 전략도 있었다.
첫 오디션에서 “정말 아깝게 떨어졌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사위원에게 확실하게 나를 각인시키자는 게 핵심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종의 게임처럼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나를 똑똑히 기억하게 만들 방법이 뭐가 있을까?
머릿속에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전략은?
첫째, SM 가수의 노래만 부르기.
당연한 전략 같지만 나는 그걸 진심으로 실천했다.
SM 소속 가수가 부른 곡이나, 심지어 그 가수가 오디션 때 불렀다고 알려진 곡들을 찾아내서 연습했다.
인터넷에서 “날계란을 먹으면 노래가 잘 나온다”는 말에 실제로 날계란도 먹어봤고, 복식호흡이 좋다길래 관련 자료를 찾아서 열심히 연습했다.
토요일만 기다리며 집에서 매일같이 노래를 불렀다.
아마 그 당시 우리 아랫집, 윗집 이웃들 정말 괴로웠을 거다. (정말 죄송합니다...)
게다가 날계란을 먹는다고 진짜 노래가 잘 되는 건 아니더라.
오히려 계란 비린내만 온종일 맴돌아서 괜히 헛웃음만 나왔다.
나는 그만큼 진심이었다.
그 노래들이 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매일 벽을 울리며 노래했다.
그렇게 준비한 노래를 오디션장에서 부를 때면
‘혹시 오늘도 나한테 “한 곡 더 불러볼래요?” 그러는 건 아닐까?’
괜한 기대가 자꾸 피어올랐다.
그러니 이번엔 좀 더 눈에 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오디션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기.
첫 오디션 날, 운 좋게 몇 곡을 더 부르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기억 때문인지,
‘가장 먼저 도착하면 심사위원이 날 먼저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 시작은 오후 3시였지만, 나는 늘 아침 9시나 10시에 도착해서 사옥 앞에 줄을 섰다.
그 앞에 있으면 당시에 인기 많던 SM 가수들이나 연습생들이 회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속으로 외쳤다.
“나도 곧 저 안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그 상상이 발끝을 간질였다.
또 한편으론, ‘이렇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심사위원도 내 성실함과 간절함을 봐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 긴 기다림조차 설렘으로 느껴졌다.
첫 오디션 땐 매서운 겨울바람에 떨었지만, 계절이 바뀌며 봄이 오고, 여름이 되자 그 기다림이 점점 덜 힘들게 느껴졌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되어갔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그 기다림이 익숙해질수록 더 집착하게 됐다.
하지만 기다림만으로는 부족했다.
셋째, 노래만 하지 않기.
똑같이 노래만 부르다간 “다음~” 소리만 듣고 끝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잔꾀라도 굴려야지.
이건 좀 어린 나이에 잔꾀를 굴려 만든 전략이었는데…
첫 오디션에서 몇 곡을 불렀다고 해서, 다음번에도 ‘5초컷’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실제로는 몇 시간을 기다려도 겨우 5초 노래하다 퇴장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살펴보니 오디션 지원 분야가 가수 외에도 연기, 모델, MC 등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쪽 지원자들은 노래를 하나 더 시킨다는 걸 눈치챘다.
그렇게 연기와 MC까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델은… 내 피지컬이 안 됐다. 지금도 안 된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노래도 벅찬데 다른 분야까지?
하지만 나를 더 오래 보여 줄 수만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때 나는 별의별 시도를 다 했다.
말도 안 되는 짧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고, MC 파트는 직접 리포터 대본을 써서 연예 뉴스처럼 오디션 현장을 중계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덥지 않으세요? 아주 오디션의 열기가 화끈한데요?? 리포터 이상구가 먼저 노래해보겠습니다! 오늘의 합격자는 과연 어디서 나올까요~?”
중딩이 오디션장에서 마이크 없이 리포터 멘트를 한다니…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중딩의 겁없는 잔꾀였을까, 귀여운 전략이었을까?
뭐가 되었든 계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남은 건 하나였다.
‘그래, 이번엔 외모다.’
마지막은, 겉모습으로 주목받기.
아이돌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겉모습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모는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스타일은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조금은 범상치 않은 중딩이 되어 보기로 했다.
작고 통통한 중학생이었던 나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두발 제한이 있어서, 내 머리는 반삭이었다 — 아주 동글동글한.
그렇게 나는 액세서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 무렵, MBC 드라마 <레인보우 로망스>에서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빨간 안경을 쓰고 나왔는데, 그게 너무 멋져 보였다.
나도 “이거다!” 싶어서 아버지랑 안경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빨간 안경을 진짜 안 팔더라. 결국 용인 시내의 모든 안경원을 돌아다닌 끝에 겨우 하나 구해서 오디션장에 쓰고 갔다.
막상 쓰고 보니 ‘이게 맞나’ 싶었다.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나름 남들과 차별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자기관리와 개성에서 눈에 띄겠지’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심사위원들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거다.
그밖에도 튀어보려고 친형의 큰 옷을 입어 힙합퍼처럼 꾸미기도 했고, 귀찌도 하고 갔다.
‘나는 준비된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한 번 한 번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는 또 다음 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버스 창밖 풍경은 매주 똑같았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다음 주엔 빨간 안경 말고 뭐라도 하나 더 준비해야 하나…? 아니면 이번엔 연기 대본을 새로 써볼까?’
그 와중에 혼자 진지하게 셀프 작전 회의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디션을 보러 간 나에게 심사위원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계속 오시면 안 돼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왜 오지 말라고 하시지? 오늘 내가 너무 별로였나? 조금만 더 잘했으면…’
그렇게 나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디션 지원서 뒷면을 보면 ‘한 달 단위로만 지원 가능’이라고 써 있었고, 그건 발표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매주 내 존재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그냥 무시해버렸다.
돌이켜보면, 일주일 만에 실력이 얼마나 늘었겠나.
매주 비슷한 실력으로 가니까, 아무리 간절함을 보여줘도 결국엔 그게 전부였을 거다.
차라리 몇 달 준비해서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심사위원에게 얼굴을 각인시키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몇 달 후,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라는 지금의 대기업 공채와 비슷한 느낌의 대규모 오디션이 열렸고, 나는 예선을 통과해 꽤 높은 단계까지 올라갔다.
본선을 앞둔 어느 날, 한 심사위원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 상구 씨 키가 많이 컸네요. 지금 몇이에요?”
비록 그 오디션에서도 결국 탈락했지만,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그래, 내가 너무 무리했더라도, 심사위원이 나를 기억하긴 했구나.’
그게 나의 전략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 행동들이 언젠가는 나를 무대 위로 올려줄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또다시 토요일 아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포기? 그런 단어는 내 버스카드엔 찍히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