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왕따, 햄버거를 쥔 채 도망쳤던 어느 날

“도망치던 아이는 어디까지 달려왔을까”

by 상구의 일기장


나의 중학교 시절은 희망과 열정만으로 가득하진 않았다.

34살이 된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중학교 2학년부터 졸업까지의 2년을 떠올릴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나는 가수의 꿈을 안고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그 노력과는 별개로, 나는 학교에서 ‘왕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었다.

밖에서는 꿈을 위해 애썼지만, 정작 매일 등교하는 학교는 지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함께 지역의 남자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그 친구들은 점점 힘이 강해졌고, 각 지역에서 모인 아이들끼리 기 싸움과 서열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소위 ‘노는 애들’이 되어갔다.


나는 그 무리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고, 오디션 준비와 연습으로 인해 시간도 맞지 않아 더 멀어졌다.


그게 이유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질투였을까.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싫어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냥 피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다음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면,

“걔네들이 너랑 놀면 때린대.”

라는 답이 돌아왔다.


반복되는 상황 속에 나는 점점 친구를 사귈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됐고,

어느새 반이 아니라 전교의 왕따가 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교복을 입는 손이 떨리고, 양치질을 하면서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못 쳐다봤다.

그 하루를 또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짓눌렀다.


‘오늘은 어떤 모욕을 당할까.’

하루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옥의 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정신적인 고통만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마다 그들은 내 반으로 찾아와 나를 때렸다.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욕을 하고, 조롱하고, 나는 그저 맞고 있어야 했다.


남자 중학교라는 특성상 그들의 폭력을 막아줄 사람도 없었고,

선생님들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그저 모른 척했다.




하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하교하려 했지만 그들이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가방을 열어, 안에 든 물건을 바닥에 쏟아내고,

그걸 발로 차고, 던지고,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정문 대신 학교 뒷산을 돌아 집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오직 나 혼자일 수 있었으니까.




폭력을 예고하는 날도 있었다.

그날은 교생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나와 상담하는 척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교생 선생님은 실제로 나와 늦게까지 남아줬다.


빈 교실 창가에 선 선생님의 옆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 모습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때 잠깐이나마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숨이 조금 트이는 듯했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교하려던 순간, 그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길을 뛰어오르던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도 발은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엔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닐까?’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공포에 질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래도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릴까 두려워 한 번도 뒤돌아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학교 뒷산으로 끌려가, 여러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 장면을 우연히 경찰이 목격했고,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지만 그들은,

“친구끼리 싸우는 거예요.”라고 했다.


나 역시 “저도 그냥 싸운 거예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폭력 사실을 말하면,

보복이 더 심해질 걸 알았기 때문에.




급식도 먹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실에서 내 뒤통수를 때리거나 창피한 말을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나를 조롱했다.

그래서 나는 급식을 신청해 놓고도 1년 내내 급식실 근처엔 가지도 못했다.


그들이 급식을 먹으러 간 틈을 타, 매점에서 햄버거를 사 와 학교 건물 뒤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방해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장소까지 쫓아와 해코지를 하기도 했다.

그때 그들의 발소리, 말소리가 들리자 본능적으로 햄버거를 한 손에 쥔 채 달리기 시작했다.


햄버거 봉투는 바람에 찢겨 나가듯 손에서 흔들렸다.

그래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그저 앞으로, 앞으로만 도망쳤다.




돈도 뜯겼다.


어떤 아이들은 나에게,

“언제까지 얼마를 모아 와라. 안 가져오면 죽는다.” 라며 협박했고,


나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서 받은 돈을 거의 2년 동안 갈취당했다.




그토록 힘들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나 전학 가면 안 될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를 걱정하셨지만, 전학은 여러 여건상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끝없는 지옥 같은 중학교 생활을 버텨야 했다.




늦은 밤, 방에 혼자 있으면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곤 했다.

내일 아침이 다시 찾아올까 두려워 잠드는 것조차 겁났다.


사실 당시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침대에 누운 채, ‘어떻게 하면 정말 끝낼 수 있을까’까지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또 울고, 또 참았다.




그 무렵, 나는 아버지와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그 또한 아버지에게 큰 상처였을 것이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아버지는 그 가해자들의 부모님을 찾아가

“제발 우리 아이 좀 그만 괴롭혀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고 죄송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상황이 조금씩 나아졌다.

졸업이 다가오며 그들은 점점 잠잠해졌고, 나도 서서히 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졸업식 날, 나는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 학교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아직도 고향 시내를 지나다가,

우연히 그 시절과 겹치는 골목이나 장소를 보면,

가슴이 벌렁거리며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서른을 넘겼지만,

그 시절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가끔은 악몽을 꾼다. 얼마 전에도 꿨다.

똑같이 학교 뒤 산길을 도망치거나,

교실 한가운데서 모두가 나를 외면하는 꿈.

그보다 더한 꿈까지. 눈뜨기 싫을 만큼 끔찍한.


그런 꿈에서 깨면 진짜로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 아직도 나는 그때의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구나.’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그날 아침, 다시 그 이야기가 이어질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스무 해 가까이 흘렀는데도, 그때의 기척은 여전히 내 삶 어딘가에 숨어 있다.




그래도 그 지옥 같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내 옆에 있어준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수가 되겠다는 그 꿈. 그게 나를 버티게 했다.


이 모든 기억은 지금도 나를 괴롭히지만,

동시에 나를 더 독하게, 더 단단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잘되는 내가, 가장 통쾌한 복수다.”


그 말 하나만 붙잡고 나는 버텼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때의 나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복도 끝에서 내 이름이 들리는 듯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오늘 또 누가 나를 건드릴까 봐 늘 책상 밑에 다리를 숨기곤 했다.


늘 어딘가에 숨어 지내야 하고, 가만히 있어도 가해자들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타겟이 될 수 있다는 그 공포.


이 순간에도 부당한 폭력에 노출된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다.”

“곧 나아질 거다.”라는 그 어떤 말도 지금 당장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조심스럽게, 아주 작은 용기를 보태며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겨내면, 정말 더 넓고 더 밝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지옥 같던 과거는,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내가 딛고 일어설 바닥이 되었다.


그건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로 혼자가 아니다.




햄버거를 쥔 채 달리던 그 아이는 오늘도 여기까지 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