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핑크좌석 앞에서 겪었던 서러움
오늘 문득 임신했을때의 기억이 나서 일기형식으로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임신때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참 감정적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임신했을 때의 기억'하면 나는 지하철에서의 추억(?)이 가장 먼저 생각 난다. 남편이 서운하게했던 일,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도 물론 있었겠지만 다행이 지금 기억에는 없고 임신때 힘들었던 것=지하철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나에게는 지하철이 참 힘들었다.
임신 9개월까지 직장을 다녔고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운전 면허가 없어(올해는 꼭 면허 따야지..했는데 임신해서 아직도 면허가 없음...ㅠㅠㅠ) 출퇴근 때 지하철을 꼭 이용해야만 했다. 임신을 처음 알고나서 지하철을 탔을때의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사람이 없었던 시간인지라 지하철 임산부석(분홍좌석)이 비어져있음에도 민망스럽기도하고 쑥쓰럽기도해서 그곳에 앉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힐긋거리기만 했었더랬다.;;보건소에서 핫핑크 임신배지를 받고 가방에 달고다녔음에도 처음에는 꺼내놓지 못했었다. 자리 양보해달라고 티내고 다니는거 같아서. 그럼에도 나의 관심은 항상 임산부석에 가있었는데 비어있으면 살며시 가서 앉기 시작했고 사람이 있으면 그냥 서있거나 다른 곳에 자리가 나면 앉곤했다.
문제는 입덧이 시작되면서 발생했다. 내 몸이 안힘들때는 참을만 했는데 그렇지 못하니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이상한게 내가 서서가도 컨디션이 괜찮을때는 임산부석에 자리가 종종 나는것 같았는데 내가 힘들어서 꼭 앉고싶은 날은 왜 항상 임산부석에 사람이 앉아있는 건지. 나는 도저히 안되겠어서 임산부뱃지를 내놓기 시작했고 지하철에 타자마자 임산부석이 비어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임신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사람들이 은근히 임산부석에 많이 앉는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많이 앉는다. 그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임산부가 지하철에 타고 앉지 못하고 있는것을 보면서도 비켜주지 않는다. 못봤으면 할말이 없지만 보고도 비켜주지 않는다.
하루는 퇴근시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날이었다. 배가 많이 불렀고 그날따라 왜이렇게 힘든지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던 날이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이라 자리가 없을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양보를 기대하며 서있었다. 임산부석에는 엄마로 보이는 40대 여성과 바로 그 옆자리에는 중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이 앉아있었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여성은 분명히 나를 보았다고 확신한다. 눈이 마주쳤고 핑크색 배지가 바로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화가난 것은 나를 보고나서 보란 듯이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서 화장을 고치고 립스틱을 빨갛게 바르고 바로 핸드폰을 하며 절대 핸드폰에서 시선을 안돌리는 것이었다. 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 앉았던 아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들은 나를 보고 내적갈등(?)을 겪는거 같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옆의 엄마한테 "엄마 임산부석에 앉았있고 지금 앞에 임산부가 있다"라는 말을 하진 못했다. 참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은 못하고 그냥 그 아줌마가 못봤으려니 애써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까지는 참을만 했던거 같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 나를 정말 어이없게 만든 일이 있어났다. 옆에 앉은 아들이 손으로 부채질을 잠깐 했는데 그걸 보고 엄마가 "더워? 자리 바꿔줄까?" 하는 것이었다(임산부석이 출입 문 바로 옆에 있어서 바람이 좀 통한다). 모르겠다. 그 말이 왜이렇게 화가나고 서러웠는지.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이해해주길 바랬던 것일까. 그 기대가 처참히 무너져버려서 서러웠던 것일까. 그때 별 생각을 다 했던거 같다. '저 아줌마는 무슨생각으로 저렇게 당당할까.', '저런 엄마한테 아들은 뭘 배울까.' 등등 그때는 감정이 격해졌던거 같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이해못하는거 아니다. 어쩔때보면 몸 불편하신 분들, 노인분들, 무척이나 피곤해보이는 젊은이들까지. 얼마나 힘들면 저기 앉아있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임산부석에 누군가 앉아있을때 옆에 가지 않았다. 괜히 신경쓰이게할까봐. 그래도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한번씩 고개를 들어서 주변에 힘들어하고있는 임산부가 있는지 확인은 해줬으면 한다. 진짜 임신이이라는게 겪어보지않으면 모를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는데 겉으로 티가 안나 잘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정말 고마운 분들도 많이 있었다. 내가 타자마자 일어서면서 여기 앉으라고 양보해주신 분들, 여기 임산부 있으니 자리좀 양보해달라고 대신 말씀해주신 분들, 본인도 임산부면서 자기는 아직 괜찮다고 앉으라고 양보해주신 분도 있었다(찐 감동). 이런 날은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며 뱃속의 뽐봄이에게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겪었던 일들, 임산부석에 관한 이런저런 슬픈 기사들, 맘카페에 올라오는 소식들이 아직은 임산부들이 지하철에서 참 힘들겠구나 생각이든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저런 비난(?)을 받을까(왜 지난일 갖고 그러냐, 정 아니꼬우면 운전하고 다녀라 등등)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분이라도 이 글을 읽고 말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임산부들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저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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