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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도 길었던 준비운동 끝, 드디어 달리기 시작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오래된 열망을 하나씩 글로써 풀어낸 작년

by Angela B


지금의 나 - 밝고 활발하며 사람에게 다가가는 걸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데다 외향적인 - 그 모습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사실이지만, 어린 시절 학교에서의 나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모여 떠들면서 그들에게 맞춰주기보단, 차라리 뒤에 앉아 창문을 보며 공상하고 주변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를 글이나 그림으로 끄적거리는 걸 더 좋아하는, 다소 내성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학생이었다.


어쩌면 평범하게 조용한 나에게 그 외 특기할 점이 있다면, 교내 외에 글짓기 대회가 있을 때마다 상의 이름만 달라질 뿐 매번 글짓기 상을 타 가던 애라는 것이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할 때 내가 그렇게까지 글솜씨가 있었다기보다는, 같이 대회에 참여한 다른 아이들이 글 쓰기 싫은 마음에 대충 썼기에 내가 어부지리로 상을 탄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작대기 두 개만 갖다줘도 그 작대기들을 가지고 혼자 이야기를 뚝딱 지어내는 아이였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옛날부터 내가 상상한 일이나, 관찰한 일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의 꿈, 가 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 등에 대해 글로 써내려 가는 걸 좋아했다. 솔직히 매일 쓰는 건 귀찮기도 했지만, 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는 나름 흥미가 있었다. 그 덕인지 한번씩 내 일기는 재미있다고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실 정도였으며, 그 말을 들은 짖궂은 애들은 장난처럼 내 일기를 뺏어서 읽어보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이름을 걸고 대외적으로 내보내는 글짓기 대회를 위해 학생들을 따로 선발하여 글을 쓰게 하는 작은 동아리 모임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덜컥 내가 뽑혔다. 불과 3학년인 내가 거기에 있어도 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지만 그 당시 내 눈에 너무도 멋져보였던 - 누가 봐도 정갈하면서도 유려한 글솜씨를 뽐내던 - 고학년 언니와 함께 교실에 앉아 글을 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홀했다. 몇십 년 전의 오래된 기억이다보니 그 때 있었던 모든 일을 다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여튼 동아리에 갈 때마다 길거나 짧은 글, 혹은 시 등을 완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새 하나둘 모인 내 글을 천천히 다 읽고 난 담당 선생님께서는 나를 응시하며 해준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는 나중에 크면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 해.
네가 쓰는 글을 엮고 책으로 내서 꼭 사람들에게 널리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렴.



당시의 나는 '작가'라는 직업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지 잘 몰랐지만, 일단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꼭 그렇게 되라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신데다 뭔가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하니 그냥 듣기에도 굉장히 좋아보였다. 그래서 한참 동안은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 내라고 하면 '작가'라고 쓰기도 했다.


이후에도 나는 학교나 외부에서 한번씩 크고 작은 상들을 받았으나, 한 살씩 먹어갈 수록 나를 시기하는 주변 급우들부터 "잘난 체한다", "재수없다" 라는 말을 듣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에 운이 좋아 좋은 결과도 따라오니 되려 옆에서 비난을 받는 상황에, 당시에는 쉽게 꼬깃해지는 알루미늄 쿠킹호일 같은 멘탈의 소유자였던 사춘기 시절의 나는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내가 더 뛰어나지 못해서, 재능이 부족해서 이렇구나'라는 참담한 마음까지 들며 글쓰기 자체에 슬슬 의욕을 잃어 갔다. 어쩌다 뭔가를 써 볼 까 하다가도 내가 스스로 만든 족쇄에 갇혀 그만 둬버리기를 수차례, 그렇게 어느덧 나는 어릴 적 나를 격려해 준 선생님의 말이 무색하게 생각보다도 더 시시한 어른이 되었다.


내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또 다른 '글쓰기'라는 가능성의 빛이 바래게 된 상황. 이건 순전히 나의 문제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은 게 있다면 일기와 편지였다. 일기만큼은 과거의 나를 증거하는 기록이라고 생각해서, 비록 한 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날이 있더라도 분량에 신경 쓰지 않고 십몇년 이상을 꾸준히 썼다. 그리고 학창시절 각종 덕질을 하다가 알게 된, 전국구의 사람들과 펜팔을 길게 했었다. 고3 수험생이 되기 전까지 서울과 인천, 대구와 전주, 부산 등 정말 각지에 사는 덕질 메이트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아직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중고등학생 여자애 특유의 감성이나마 나름 정성을 다해 글 속에 담아 편지를 적었었다. 둘다 별거 없어보이더라도,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글이라는 매개체를 완전히 놓지 않도록 하는 연결끈이자 어쩌면 언젠가는 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한 준비운동이었던 듯 하다.


해마다 책장 속에 쌓여가는 일기장들을 보며 가끔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의 글과 그에 담긴 생각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볼까?'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에, 내가 쓰는 일기의 끝맺음은 종종 의문형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아온 나의 일기장들.



나는 기본적으로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꽤 많은 국가를 다녔기에 여행 전에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 나라에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쓴 여행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흔히 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소설"이나 "시"가 아닌, 낯선 곳에 직접 가본 뒤 아이디어를 얻어 생성된 글들을 읽으며 매력을 느낀 나는 "어쩌면 나도 내 경험을 글로 써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부푼 꿈에 들떴다가도, 다시금 특유의 귀차니즘과 실패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동되곤 했다. 스스로 쳐놓은 경계막은 생각보다 힘이 세서 - 현재까지 전세계 40여개 국을 여행하고 심지어 몇 나라에서는 살기까지 했으면서 - 평소에는 그토록 추진력이 강한 내가 그 생각을 감히 실행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어쩌다 운명의 발길이 닿아 이제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까지 살러 왔으나 정신 없이 파견 생활의 반 이상이 지날 때까지도, 연애할 때도 해본 적 없는 밀당과 간 보는 듯한 행동을 무려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꼬박꼬박 일기는 썼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아르헨티나로 친구가 놀러왔다. 친구는 평소 남미 여행을 너무도 와 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는데, '나'라는 현지인이 생기니 태평양을 건너 올 용기가 샘솟아 일행과 함께 놀러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친구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놀랐던 점이, 인터넷에서 찾아 보는 여행 정보 같은 거 외엔 의외로 아르헨티나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책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기 같은 느낌의 책도 찾아서 읽고 싶었는데, 남미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필수 여행지인 아르헨티나와 관련한 책은 한국에 전무하다는 거다. 그래서 친구가 대뜸 내게 한 말은 이거였다.


언니가 아르헨티나에 대한 책을 한 권 꼭 써 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언니 말고 누가 있겠어.


지나가듯 해 준 친구의 무심한 격려의 말은 되려 내 머리에 내리치는 강한 번개 같은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이후 친구 일행의 가이드를 마치고 무사히 그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후, 내가 써 온 일기를 토대로 책 내용에 들어갈 기초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너무나도 길었던 한 세월의 준비운동을 끝내기로 마음 먹기 무섭게 쓰고 또 썼다. 바쁠 땐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한 줄씩 겨우 썼고, 간만에 시간이 나는 주말에는 밤을 새고 어느새 밝아오는 새벽 여명을 보면서 썼다. 여행을 가서도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호텔에 틀어박혀 노트북 자판을 기계처럼 두들기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휴대폰 메모장을 켜 생각이 나는 대로 휘갈겼다가 내가 휘갈겨 썼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수정에 할애하기도 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 혹은 "글을 써야겠다" 라는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 속에 꾹꾹 담아둔 열망이, 마치 막아뒀던 둑이 터진 듯 드디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열망은 이 자체로 그치지 않고, 하나씩 형태를 띄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차츰 찰흙으로 공들여 조각을 해 나가듯 살을 붙이고 떼가며 천천히 작품의 밑바탕을 완성해 간 것이 지난 한 해, 2024년이었다.


어느덧 2024년 마지막 월인 12월이 되었고, 당시 내가 계획하던 분량의 약 80퍼센트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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