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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Aug 08. 2017

EI : 파견 초반, 내가 저지른 야한 스페인어 실수

지금도 학교 회식자리마다 회자되는 꼬레아나 앙헬라의 레전드 스페인어


나는 작년 8월 말에 이곳 페루에 파견 왔다. 파견 당시에는 스페인어를 거의 잘 못하는 상태에서 왔기에 의사소통면에서 힘든 일들이 많았고, 특히 외국어를 배울 때 - 말이 되든 안되든 일단 뱉고 보는 성격 탓에 저지른 실수들도 상당히 많은데 (물론 지금도 실수는 계속 되고 있다) 그 동안 내가 저지른 것 중 가장 강렬한 것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년 11월 말. 남미 시간으로는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 무렵 - 꼬아르 학교 이름으로 참여하는 Aniversario de Moquegua 모께구아 기념일 지역 행사를 마치고, 다같이 점심 시간에 직원 회식으로 Cuyeria (꾸이 전문 식당)에 꾸이를 먹으러 갔었다.


이녀석들이 꾸이 Cuy. 내가 있는 모께구아는 기니피그 요리가 유명한 곳이다. 처음에는 이 귀여운 녀석들을 어떻게 먹냐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점점 즐기게 되었다. 귀엽지만 맛있다.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꾸이 요리 Cuy frito 는 사지를 분열하여 튀겨져서 나왔다. 꾸이를 먹기 전에 먹기 전에 "너를 먹어서 미안하다" 며 꾸이의 손(발)을 잡고 악수를 해서 좌중을 웃기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먹기 전 꾸이와 악수하는 중. 나름 꾸이를 향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식전 의식이다.




선생님들은 나오자마자 꾸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나는 원래 뜨거운 것을 잘 못먹는 스타일이라 주저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교장은 앙헬라는 왜 빨리 안먹냐며, 꾸이 머리를 한 번 먹어보라며 (여기 페루에서는 꾸이의 머리를 먹으면서 귀 부근에 있는 달팽이관 뼈 Hueso cóclea o caracol 를 찾는 것이 풍습이라 한다. 찾으면 뭔가 좋다는 속설이 있다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머리를 굴려가며 내가 아는 스페인어 단어를 총동원해서 문장을 만들었다.


Estoy caliente porque la cabeza.

에스또이 깔리엔떼 뽀르께 라 까베사.


나는 이게 너무 뜨거워서 머리를 먹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스페인어로 하고 싶었는데 - 내 대답을 들은 교장은 갑자기 정말 얼굴이 빨개지며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거기 있던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나는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토마토와 같이 얼굴이 빨개진 미우리 영어 선생님이 나에게 한참 뒤에 영어로 수줍게 설명해주었다.


1. Cabeza 까베사 : 기본적으로는 머리, 라는 뜻의 명사이지만 스페인어의 다른 맥락으로는 남성의 성기 부분을 지칭하기도 한단다.

2. Caliente 깔리엔떼 : 기본적으로는 뜨거운, 이란 뜻의 형용사이지만 음란한, 섹시한 이란 뜻도 같이 있다고 한다. 이건 영어의 형용사 hot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영어 선생님이 다시 덧붙이기를,

1. Cabeza 까베사라고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Mi cabeza 미 까베사 (내 머리), Dolor de cabeza 돌로르 데 까베사 (두통), Cabeza del cuy 까베사 델 꾸이 (꾸이 머리) 이런 식으로 수식어를 붙여서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야 "머리"라는 뜻이 확실해지니까 말이다.

2. Caliente 깔리엔떼도 마찬가지. 사람에게 수식하면 뜨겁다라는 뜻보다는 섹시하다, 야하다 이런 뜻 밖에 안되고, Agua caliente 아구아 깔리엔떼 (뜨거운 물), Chocolate caliente 쵸콜라떼 깔리엔떼 (핫초코) 등 사물에 수식할 때는 확실히 "뜨거운"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 참고로 덥다는 표현은 Mucho calor 무쵸 깔로르, hace much calor 아쎄 무쵸 깔로르. 이렇게 표현하면 된다고.


결론 : 나는 스페인어를 잘 모르는 죄로 음란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가 앞서 말한 문장을 야하게 해석해보자면 cabeza 때문에 내 몸이 뜨거워요 란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잊을 만 하면 회자되는 - 특히 교장이 그걸 잊지 않고 틈날 때 마다 말한다. 이제는 제발 잊어줬으면 하는데 이 양반이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 전설적인 실수를 제조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날 회식이 문제였는지 나는 급체를 하는 바람에 - 다음 날까지 너무도 아파서 결국 학교에도 출근하지 못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정말이지 어떤 의미에서건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다.


음란하고도 (?) 슬픈 그날 회식의 추억.
이게 다 이날 먹은 꾸이 때문인지, 아님 행사 때 흘러내릴까봐 심하게 졸라맨 한복 탓인지, 나는 다음 날 까지 급체로 인한 구토를 심하게 하고 말았다.




이조차도 모두 언어를 배우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분명 내가 어렸을 적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울 때도, 내 2 언어인 영어를 배울 때도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실수들을 저질렀을 것이며, 지금도 그 두 언어를 구사하는 도중에 계속 무수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작년에 생긴 이 일은 그 과정 중에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중 하나로 웃어 넘기려고 한다. 물론, 그 내용이나 여파가 아직까지도 지속되는 등 상당히 크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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