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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책 출판 계약 완료, 초보 작가로서 한걸음

실제 책이 출판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부딪히며 습득하는 중

by Angela B


2025년 2월 중순이 넘어서야 드디어 3년 만에 한국에 입국했다.

먼저, 긴 세월 여러 통증을 참고 견딘만큼 병원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 아르헨티나에서 받아온 의료 기록을 다 제출하고, 한국에서도 관련 정밀 검사를 실시했는데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다고 해서 결국 얼마 간 병가 처리를 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휴대폰 기기 변경도 하며 그동안 나를 속 터지게 하던 중고폰에서도 드디어 해방되었다.


그렇게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나에게 닥친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폭풍의 며칠을 보내고서야 출판사에 연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겨우 떠올렸다. 내 한국 연락처로 출판사 담당자에게 문자를 남겨두었더니 잠시 뒤 답변이 왔는데, 안 그래도 이쯤 입국한다고 했던 것 같아 마침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이후에는 전화를 했고, 내게 초고가 얼마만큼 진행이 되었냐고 묻기에 90퍼센트 정도 글을 써놨다고 했더니 그 정도면 금방 책이 완성 될 것 같다며 바로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렇게 바로 이틀 뒤 일사천리로 계약을 위해 약속을 잡고, 지방러인 나는 급하게 서울행을 택했다.

(대략 3~4시간 정도 걸리긴 하지만 사실 땅덩이가 좁은 한국이니까 멀어보이는 거지, 남미 기준으로 치면 나름 cerquita 라고 말할 수 있는 옆 동네다 ^^ㅋㅋ) 여튼 나의 이 결정이, 나의 만남이, 뭔가 앞으로의 내 인생의 궤도가 달라지는 선택이 될 것만 같아 전날 밤부터 엄청나게 떨렸다. 가는 길에 최대한 긴장을 덜 하도록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반복 재생으로 잔뜩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름 스스로는 차분해지려고 노력했으나, 사실은 뭔가 얼빠질 정도로 신난 강아지가 된 기분으로 투명 꼬리를 붕붕 돌리며 약속 장소인 출판사 근처 카페로 갔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먼저 나오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는 했지만, 도착한 카페는 막상 생각보다 컸고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나는 출판사 분들의 인상착의를 전혀 몰랐기에 한참 그들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나서야 어떤 이가 "혹시 ○○님?"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분이 내가 연락을 주고 받았던 미다스북스의 편집팀장님이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이뤄진 출판사쪽과의 만남.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계약관련 마케팅 본부장님이셨고, 또 한 분은 편집팀장님이었다. 외향적이신 본부장님과 잠시 아이스브레이킹 후, 계약서 관련 용어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본부장님은 사정상 먼저 나가시고, 편집팀장과 어제까지 정리해 갔던 계약 및 책 관련 궁금했던 사항을 차분하게 진행하며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처음으로 책을 내는 신진 작가로서의 나의 질문은 대략 이랬다.

- 내 아이디어의 어떤 점을 보고 나와 계약해서 책을 내기로 결심했는가?

- 다른 작가들과의 작업 과정 및 결과물 예시 설명이 필요하다.

- 구체적으로 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며, 이러이러한 출판 관련 용어들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 홍보와 마케팅이 이루어지는가?

- 온/오프라인 서점과 어떤 방법으로 공조가 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알아나가면서 내가 지금껏 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경험과 흥미로운 도전을 하고 있으며, 살아온 삶에서 전혀 다른 분야를 배워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계약을 맺고 출판사와 협조해서 책을 내는 일이지만 결국 기본적으로 작가이자 창작자는 나고, 책은 내가 내 아이디어, 내 머리로 낳는 자식이었다. 그러니 정말 출판사만 할 수 있는 일부 과정 이외에 모든 과정에서 내가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고, 내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내가 창작해야 할 일인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게 "작가로서의 새 삶을 살기 위해 나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작업"이라는 본부장님의 말에 머리에 번개가 내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다스북스는 신진 작가들과도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처럼 함께 첫 작품을 준비했다가 지금은 더 잘 풀린 작가들의 예시들을 덕담처럼 들어주셨다. '과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설마 첫 술에 배부를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젠 물러설 수 없다. 물론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높고 또 많은 알고 있지만, 나는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니 나 스스로를 믿고 기세 좋게 나아가야만 한다.


여튼 여러 궁금증을 해소한 뒤 중요할 때 사용하는 몽블랑 볼펜으로 한 글자씩 인적사항을 적어내려가며 계약서에 또박 또박 사인했다. 휴, 나는 이제 작가(진)! 이다





사인하고 편집장님은 출판사로 돌아가시고, 계좌로 금방 계약금도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뒤 결정된 편집자가 직접 보낸 가이딩 메일이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다음 날 저녁 새로 내 담당이 된 편집자님의 기나긴 가이딩 메일을 받았고, 생각보다 세세한 것들까지 적혀있는 메일을 보면서 전체 초고 작업이 내가 앞으로 할 작업 중에 제일 빡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딩 메일에 적힌 초고 마감 시간은 생각보다 촉박했다. 일단 메일을 받았을 당시까지 글을 다 못 쓴 상태였다(나에게는 제일 쓰기 힘들었던 글이 두 개가 남았던 지라 사전 조사가 좀 더 필요했다). 게다가 내 글은 시소같은 시차를 견디며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교포 친구가 직접 읽고 필요한 팩트체크를 해 주고 있는 중이라 이래 저래 완성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막 귀국했을 땐 허리 통증도 너무 심했어서 작업에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글을 다 쓰고 나면 알맞게 들어갈 사진 선별 작업도 필요했다. 여튼 이러이러한 이유로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하니 편집자님께서 2주 정도 말미를 더 주셨다. 전체 뼈대를 세우고 살을 덕지덕지 잘 붙여두는 초고 작업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 되도록 어떤 약속도 만들지 않으면서 필요한 운동 이외에는 거의 집과 병원만 다니며 내 책 작업에 최우선 순위를 두기로 했다.





저녁부터 새벽 시간까지 효율과 생산력이 올라가는, 어쩔 수 없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한국 방향으로 돌려놓은 듯 하던 생체시계가 다시 남미 아르헨티나 방향으로 회귀해버렸다. 지구 반대편 시간으로 사는 뱀파이어형 인간이 되어 드디어 혼신의 힘을 다해 밤마다 글을 썼고, 마지막 글을 다 끝낸 시각은 새벽 3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혼자서 내적 댄스를 추며 새벽녘에 시원하게 물을 마신 뒤 가뿐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이제 글을 다 썼고, 앞으로는 깨작깨작 글과 표현을 손보고 사진만 붙이면 되니 전체 초고의 9부 능선을 넘은 거라고 좋아했었으나, 사실 초고 작업을 시작하고 나니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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