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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Oct 01. 2017

MD: 잔인한 9월 + 아찔한 페루 경찰서 경험

온갖 맘고생과 액땜을 했던 2017년 9월 한 달의 개인 기록


한국, 미국, 페루 리마, 그리고 다시 모께구아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었다.

내려 올 때 리마 공항에서 점심 사 먹을때 1솔 기념주화 쿠스코 마추픽추를 우연히 얻게 되어서, 이제는 좋은 일들만 생기겠거니 했는데 - 이번 달은 어째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간 잘 지냈고 나 역시 호감이 있었던 사람이랑 이제는 더 이상 서로 연락을 안 하게 된 것, 내가 알아서 일을 잘 한다 싶었는지 이젠 작정하고 모두 내게 일을 미루는 코티쳐 때문에 그간 쌓인게 폭발해버려서 현지 코디네이터 선생님 통해서 교장한테 한바탕 퍼부었던 것, 어째 나만 보면 미친듯이 달려들어 짖는 아랫집 개 때문에 그 집 초딩 아들이랑 고함지르며 싸우는 일 등 - 정말 심적으로 힘들었고 다사다난하게 보낸 한 달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위에 언급하지 않은, 내겐 더 강렬했던 것들만 골라 적어보겠다. (....)






* 시간 외 수당 부당지급으로 큰 벌금을 내야했다.


모께구아에 내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학교 행정실에서 달갑지 않은 연락이 왔다.

8월 말 감사 결과 2014년, 2015년에 규정에 어긋나는 시간 외 수당을 많이 받았다며 - 제법 큰 돈에 곱하기 두 배를 해서그걸 모두 일시불로 벌금처럼 내라고 했다. 


정작 나는 그때 2년간 학년 주무였고, 학생들 데리고 온갖 대회는 다 참석시키고 지도하느라 정말이지 소처럼 일할 때였다. 그래서 정확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우리 학교에서 시간 외 수당은 함부로 달 수가 없어서 전부 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달아라-라고 친히 시간까지 전부 지시하시기에 그걸 따른 죄밖에 없건만 말이지. 

근데 그게 뭔가 올해 지침이 바뀌면서 내가 무슨 사기를 쳐서 돈을 많이 타간 사람처럼 되었나보다. 

행정실에서 계속 하소연 및 협박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내긴 했지만 정말 억울했다. 받은 돈만 토해내면 모르겠는데 거기에 곱하기 두 배라니. 생각지 못한 큰 지출로 9월 초반부부터 정말 석연치 않게 시작해야겠다.





* 집이랑 학교에 있을 때 지진이 났었다.


여기에 있으면서 지진이 이번이 처음은 절대 아니지만 여튼 그렇다. 

사실 멕시코와 페루 두 나라의 판의 경계가 달라서 멕시코 지진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은 벨라운데 테리 학교에서 학생들 데리고 수업할 때, 그리고 한번은 집에서 청소하고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지진이 났었다. 창문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마구 흔들리는데 그대로 깨질 것 같아서 살짝 겁나긴 했다. (결국 깨지진 않았지만 가구가 흔들려서 살짝 위치가 바뀔 정도였다.) 다른 코이카 시니어 선생님 말씀으로는 밤 깊은 자정 쯤에도 한번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는 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보통 심발지진은 깊은 밤에 일어나서 인명피해가 크니까 조심해야하긴 하지만.


사실 여기 살면 자잘한 지진쯤은 별거 아닌 것 처럼 느끼게 된다. 오잉, 땅이 흔들리는 것 같다니. 내가 술에 취한건가? 하고 생각하면 그뿐. (여기서는 술에 취한 것 보다 실제로 땅이 흔들렸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하지만 멕시코 지진이 이제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졌다는 건 문제다. 이게 9월 중순에 있었던 일이다.





* 아이폰을 잃어버린 일 때문에 현지 경찰서에 몇 번이고 찾아갔고, 조서를 썼다. - 라고 쓰고 아찔한 페루비안 경찰서 체험이라 읽는다.


이 탈 많은 9월의 끝을 가장 강렬했던 건 역시 멀쩡히 잘 쓰고 있던 아이폰을 잃어버린 일, 그리고 그거 때문에 경찰서를 가서 조서를 쓰고 다시 찾아가는 등 말로만 전해듣던 그 아찔한 (?) 페루비안 서비스를 체험한 거다. 그것도 몇 번이나.


사건은 내가 밤에 센트로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어디론가 폰이 흘러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리고 자쌤 (나와 같이 파견 오신 퇴직 자문관 선생님을 나는 그냥 "자쌤"이라 부른다) 네랑 인사하고 내려오자마자 폰이 없어진 것을 직감한 나는 바로 그 택시를 불렀으나 그 택시가 미친듯이 빨리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얼른 집에 뛰어가서 분실 모드를 키고, (아이폰 분실 모드를 키면 "메시지"를 작성해서 띄울 수가 있고, 내 메시지에는 "폰을 잃어버렸습니다. 보시면 이 연락처로 연락주세요. 사례하겠습니다." 이 말이 스페인어로 적혀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아이패드로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위치추적을 하니 어딘가로 가다가 아래의 위치에서 일단 멈추더라. 코이카 분들은 일단 내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주기로 하셨고, 일단 이 모든게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기에 미안해서 혼자 가려고 하는데 - 절대 아가씨 혼자 늦게 보낼 수 없다는 자쌤네와 함께 밤에 다시 택시 타고 그리로 뛰어갔었다. 사실 위치추적을 위해 자쌤네의 테더링이 필요하기도 했고. 


위치 추적에서 잡힌 그 주변을 돌면서 혹시 검은 색 꼬빠까바나 (택시 마르까 : 스페인어로 상호나 상표) 택시를 이 주변에서 본 적이 있냐며 주민분들의 협조를 얻어 하나하나 묻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꺼졌다. 분실모드라 계속 내가 사운드 알림을 켜두기도 했고, 코이카 선생님이 전화를 계속 걸었으니 바로 내 폰을 알아차리고 꺼버린 듯하였다. 나도 계속 더 묻다가 안되서 주변 동네 관할 산 프란시스코 경찰서로 갔고, 잠을 자고 있었다가 나온 숙직 경찰관 한 명이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상황 설명을 했다. 그러더니 경찰관은 알았으니 내일 이야기하자며 7시에 나오라고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지만 속상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밤에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모기와 샌드 플라이에게 뜯긴 내 다리 상태 또한 엉망이고. 그 폰에는 내 체크카드도 들어있었던 말이다. 비록 거기에는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안 들어있었지만, 그 카드와 연동 된게 내 월급 계좌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까 막막하기도 했다.

  


밤 11시 14분 쯤에 위치 추적이 끊겼다. 



결국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고 다시 자쌤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산 프란시스코 경찰서에 갔다. 다른 경찰관한테도 이야기를 했고, 어제 그 경찰관과 같이 동네에 조사하러 같이 다녀오라 해서 그러려마 했는데 이 사람들이 택시를 타자는 게 아닌가. 여긴 왜 경찰차를 타지 않냐고 물어보니 간밤에 차 사고가 나서 경찰차 앞이 다 부셔졌다고 했다. 난 외국인인 내가 귀찮아서 그렇게 일부러 대답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 앞 범퍼가 다 깨져있었다. (....) 세상에나. 역시 되는 게 없다.


그렇게 다시 어제의 경찰관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이 사람은 할아버지에 가까운데다 뭔가 찜찜하고 일처리도 시원치 않고, 결정적으로 눈이 침침해서 내가 찍어준 아이패드 위치를 잘 읽지도 못했고 기계도 다루질 못했다. 내가 답답해서 앞장서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물어보고 경찰관은 그냥 내 뒤를 따라오는 식이었다. (....) 아니 이게 무슨 경찰이냐.


나는 이 시점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보험회사에 청구할 조서가 필요하니 조서나 써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인간이 기뻐하면서 나더러 그럼 센트로에 있는 경찰서에 가야한다며 그리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돈을 내는 택시를 같이 타고 자기는 자기 집 근처에서 내렸다. 뭐 이런! 그래, 참자. 


여튼 그 영감쟁이 경찰관을 뒤로하고, 센트로에 있는 제법 큰 경찰서에 가니 또 다른 영감이 무슨 일이냐며 일단 내 앞길을 막는다. 잘 안되는 스페인어로 어떻게든 상황 설명을 길게 했고 - 나는 폰을 되찾는다는 희망은 버렸으니 일단 보험회사에 청구할 조서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 영감이 hurto (절도) 로 해줄 수가 없다는 거다. 굉장히 말을 빙빙 돌려서 설명하긴 했는데 hurto 가 되면 경찰서 내에서 Fiscalia 라고 하는 재산 상의 피해와 관련된 부서를 한 번 더 거쳐야 한다고 하는 듯 했는데, 그나저나 그건 니가 잃어버린 거지 왜 절도로 써줘야 하느냐 묻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위치추적을 했고, 분실모드를 켰고, 내 폰을 켜면 '폰을 잃어버렸으니 이 번호로 연락 주고, 돌려주면 사례하겠다' 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전화 도중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건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데 그냥 안돌려 주고 있다는 거니 남의 재산을 함부로 가져간 것이고 그건 절도가 맞다. 너네 법에도 그렇게 적혀있을 거다"라고 - 마구잡이 스페인어로 나름 차근차근 설명했는데, 그냥 내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았고, 이 인간이 나를 대놓고 또 다른 데로 돌릴 폭탄 취급하는게 느껴져서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내가 말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 그랬을까. 내일 오라고 하길래 하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연락 수단이 없어져버린 나는 하루 종일 내내 신경이 곤두서있던 탓에 쓰러져서 집에서는 아무것도 못먹고 내내 자버렸다. (알고보니 내가 만났던 이 영감쟁이 경찰이, 이 경찰서 내의 최고의 꼰대이자 일 잘 못하는 인간이었던 듯 했다.)


여튼 상황을 다시 학교에 설명하고, (교장도 어제 영감쟁이 경찰같은 소리를 해서 좌절했지만) 나를 믿고 도와주는 - 내가 띠오 (스페인어로 삼촌) 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우리 담당 데니스 영어 선생님과 함께 어제와는 다른 경찰서에 갔다. 아무래도 어제와 같은 꼰대 영감을 만날까봐 당장 그곳의 헤페 (스페인어로 보스, 가장 높은 사람) 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니 하필 첸첸 지역에 불이 나서 (.....) 거기에 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 혼자 있을 때 그 말을 했다면 또 거짓말로 알았겠지만 현지 선생님과 같이 갔는데 저런 말을 할 정도면 거짓말 같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어제의 경찰서로 또 가야했다. 


하지만 어제의 반응과는 달리, 담당 호벤 (스페인어로 젊은이.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다) 들은 친절했고, 모델이 아이폰인데다 거기에 체크 카드도 같이 있었고, 전화를 했고, 위치추적을 했고, 이런 저런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데니스의 통역을 듣고는 절도 사건으로 처리해주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일처리가 너무도 느릴 뿐. 

두번 세번 똑같은 이야기 하는 건 기본이고, 영어와 한국어로 병기된 내 여권을 이해를 못해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기도 하고, 동양인 여자가 신기한지 내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 등 - 오죽하면 통역을 맡은 데니스가 나중에는 졸음이 와서 졸았겠는가. 한국 같았으면 길어야 20분이면 다 끝날 일을 장장 4시간 넘게 잡혀있었으니 이해가 된다. 드디어 인쇄하는 소리가 나기에 다 끝난 줄 알고 둘이서 기뻐했는데 서류를 며칠 뒤에 다른 경찰서에 가서 찾으러 가라는 게 아닌가! 그 말에 폭발해서 이번이 네 번째 경찰서 방문이다. 난 절대 그럴 수 없다, 내놔라. 이야기 했더니 그럼 기다려서 언제 5시 넘어서 오란다. 호벤 경찰관이 말하길 자기도 결재를 받아야 서류를 줄수 있다고 해서 그럼 내가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모비스타 (페루의 전화국들 중 하나) 에 가서 유심칩을 하나 사고 싶다고 했더니 내 볼룬따리오 (봉사) 비자로는 혼자서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어서 - 파견 와서 일하러 온 사람에게 코이카 봉사단원 비자를 주다니. 쓸데없이 몇 개월을 또 다시 비자 기다리기 싫어 그냥 쓰긴 하지만, 정말 페루 이민국 이놈들은 단체로 짤려서 직장을 잃어봐야 한다 -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며칠 뒤에 데니스 영어 선생님께서 시간을 내어 유심칩을 사고 가입해서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며칠 간 계속 폰 없이 살았었다.)


나중에 다시 경찰서에 혼자 가니, 서류를 금방 줄 줄 알았던 나는 거기서 또 페루비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다 따로 등록하는 등 2시간 넘게 기다리고 따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좀 집에 가도 괜찮은가 싶었는데  Fiscalia 가 다시 불러서 조사하고, 또 서류 심사 파트에서 다시 불러 조사하고, 하여튼 그들이 요구할 때마다 이리저리 사무실을 옮겨다니며 진술을 해야했다. 정말 너무너무 피곤한 나날이었다.




지금 내가 되살려서 쓰고 있는 아이폰은 이게 한 5년 쯤 된 중고폰이고, 한번 침수가 됐던 걸 다시 복구 시킨거라 그런지 발열이 너무 심해서 가끔 핫팩보다 뜨거워 언제 터질까 무섭다. 게다가 아마 폰의 생명으로 치자면 할아버지급인 수명에 맞게 밧데리가 미친듯이 빨리 닳아서 사진 한 장 찍을 때 마다 1-2%가 그대로 닳아버리는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폰을 잘 안쓰고 안 보게 된다.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빨리 핸드폰을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여튼 근 일주일 넘게 끌었던 이 사건 내내 - 나는 정말이지 이 사회의 약자이고 나 혼자서는 현지인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절절히 느꼈다. 그런데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페루 국민들에게도 이렇다고 하니 (....), 공권력이 약하고 부패한 나라들은 다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옛날 우리나라도 이랬을까. 우리나라 경찰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안 좋아서 그렇지 - 실제로 일어났고 또 접수된 사건에 있어서는 나름 철저하게 일하고 조사하는 편인데 말이지.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살기 좋고 법체계가 잘 되어있는 나라라는 걸 -  특히 개도국에 나와서 살게 되면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현지 시각으로는 아직 9월 30일 토요일. 아직 액땜은 끝나지 않았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수없게 길에서 짖는 개들에게 입질(무는 행위)을 당했었다. 깊게 안물어서 그렇지 물었으면 또 치료받으러 리마로 가야할 뻔 했다....  




앞으로는 이런 정신없는 일들, 좌절하는 일들, 생각이 많아지고 피곤해지는 일들 말고 - 

정말 좋은 일들, 하루 종일 웃음 나고 행복한 일들이 마구마구 생길 거라고 믿는다, 제발 그래주길.

:-) 액땜아 날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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