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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Aug 31. 2017

VL: 남미 여행 - 칠레, 아르헨 공동묘지 이야기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서로를 공유하는 추억의 정원.


남들에게는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묘지에 가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내가 묘지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거창하고 큰 이유는 없지만, 굳이 떠오르는 이유를 나열해보자면 - 이미 이 세상에 살다가 떠난 자의 흔적을 찾아보는 게, 현재 살아있는 자인 내가 스스로 잘 하고 있는지, 부끄럽게 살다가 가진 않을지 점검해보는 것. 그리고 하루라도 더 즐겁고 의미있게 살기 위한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된다고나 할까.

보통 서양권 나라에서는 보통 치안이 안전한 곳에 묘지를 마련하고, 마치 아름다운 정원처럼 꾸미는 등 관리를 깔끔하게 한다. 그래서 나 개인이 묘지에 묻혀 있는 이들과 큰 관련이 없어도 - 그저 산책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마련해 놓는 곳이 보통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파견 나와 살고 있는 페루의 경우는 공동묘지가 파벨라촌 (원래 포르투갈어로 빈민지역 및 우범지대를 의미하지만 스페인어권에서도 이렇게 지칭해도 알아듣는다.) 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묘지 주변과 안쪽 모두가 치안이 상당히 안좋은 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페루의 묘지에 가 보진 못했고, 앞으로도 거길 갈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 인종구성을 볼 때 - 역시 서양권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남미에서 내가 그동안 가본 곳 중에서는 -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안전한 위치에 부담없이 갈 수 있는 묘지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그 중 내가 직접 가본 곳 세 곳을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남미에서 치안은 곧 목숨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 이 묘지들을 내가 갔다는 것 자체가 여자 혼자 다녀도 별 문제 없이 안전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들도.




• 칠레 최남단 푼타 아레나스 공동묘지

이곳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라고 일컬어지는 곳이기도 하고, 호스텔에서 만났던 독일 아저씨가 자기는 예전에 갔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니 꼭 가보라며, Enjoy the cemetery 라는 - 날 빵터지게 만드는 말을 남겨주셨기에 산책가는 기분으로 갔다.




긴 나라로 유명한 칠레는 크게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어지며 지역별로 분위기가 다른 편인데, 푼타 아레나스가 속한 칠레 최남단 파타고니아 지방의 마가야네스 주는 유럽에서 이민 온 개척자들이 와서 이룩한 동네이다. 이 동네 사람들 성이나 이름 중에 특히 영국과 독일, 프랑스계가 많은 이유이다. 묘지명을 잘 살펴보니 과연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푼타 아레나스 공동묘지를 돌아보는 동안 계속 내 곁을 맴돌며 나를 지켜준 검은 개 한 마리.




홀로 무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아주머니가 있어 괜히 무서운 마음에 일부러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나를 울게 만들었다.


아주머니는 옛날 아주머니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아버지와 많이 싸웠다고 했다. 생전에 대화를 많이 못한게 너무도 미안했다고.

그래서 가끔 시간이 나면 아빠가 묻혀있는 이 곳에 종종 찾아와 아빠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물론 일방적인 대화이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후련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순간 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지고 나서야 후회를 하는 것일까.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푼타 아레나스 공동묘지. 홀로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곳이라 추천한다.








• 칠레 북부 사막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공동묘지


안데스 산맥과 칠레 옆을 흐르는 해류의 영향으로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며 대기가 안정된 곳이라는 칠레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그 메마른 마을에서 한칸 벗어난 곳이 공동 묘지가 있다. 이곳에서는 서양권에서 보기엔 다소 특이한 문화가 있는데 - 묘지 한 켠을 꾸며 생전에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을 놓아준다고 한다. 마치 과거 이집트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들을 무덤에 놓던 것이나,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서 제사를 지낼 때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놓아주던 것과 맥락이 같은 것 같다.



해발 6000미터가 넘는 아름다운 화산을 배경으로 두르고 있는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공동묘지.




마을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관광지인 덕에 늘 시끌벅적한 아타카마에서 이 공동묘지는 가장 조용한 곳 중 하나이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에서 할일 없이 쏘다니던 (올해 1월 말 이상기후로 인해 아타카마 사막에서 오후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람에 난 3박 4일간 거의 아무 투어도 하지 못하고 마을에  주로 갇혀있었다) 나는 이곳에만 세 번 정도 왔었는데, 마지막 세 번째 왔을 때 여섯 노인이 모여 뭔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인지 물었더니 오늘이 작년에 죽은 그들의 친구의 기일이라고 한다.





- 그래 이 놈은 이걸 좋아했었지.
- 아니야, 걔는 그렇게 하는 걸 더 좋아했어.

- 그 녀석은 참 이랬었는데, 그렇지?


노인들은 작년에 죽은 친구를 기리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두런두런 담담하게 나누는 대화가 더 가슴 아팠다. 그리고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나도 내가 죽으면,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서 생전에 내가 했던 것들을 추억하며 이야기할까.




사막에서는 꽃이 귀한데다 금세 시들어버려 보통 묘지에는 조화를 놓아 장식한다고 한다.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콜레타 공동묘지


화려함의 극치. 부촌에 자리한 레콜레타 묘지는 부유한 사람들만 (이곳에 안장되는데만 몇 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묻힐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은 다른 묘지들처럼 과거의 박제된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쉬는 현재진행형인 곳이다.


레콜레타 가는 길에는 꽃을 많이 판다.
레콜레타 주변의 길들도 공원처럼 조성이 잘 되어 있다.
레콜레타 입구. 입구가 지하철 역하고는 좀 떨어져 있는 편이라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쓰인 벽면 장식.




보통 관광객들은 아르헨티나의 국모 에바 페론, 애칭으로 에비타의 묘지를 보기 위해 오는데 나는 에비타의 묘지보다는 그 주변의 고양이들과, 내가 우연히 보게된 한 해군 노병의 장례식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유명한 에비타의 무덤보다는 근처 고양이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애교를 부리던 귀여운 녀석들.




노병의 관을 따라 이동하던 장례 행렬과 사람들.


한 노병의 장례식.

그리고 담담한 표정들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 때때로 눈물을 보이던 그들은 군대식으로 칼을 들고 공포탄을 쏘아 이미 그들 곁을 떠난 이를 기렸다. 그 주변에는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었고 그렇게 삶과 죽음은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함을 다시금 느꼈다.











요즘은 스페인어로 Cementerio (공동묘지) 대신 El jardín del recuerdo (기억의 정원) 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추세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예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기억되는 한, 그들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과 추억들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절대 그들은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그렇게 우리와 함께 "기억의 정원"에서 살아 숨쉴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영화 "미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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