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살 수 있어요 (2)

삶,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게 되는 순간

by 성원

이적 - 당연한 것들




“환자분, 살 수 있어요.”



아니 이게 뭔가. 살 수 있다니. 그럼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언제나 끝이 있는데, 고작 25살이었던 나에게 삶은 너무 당연했다.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순간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30대와 40대, 또 그 이후의 삶을 위해 20대의 청춘을 갈아 넣고 있던 내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선생님의 “살 수 있어요.”라는 말이 내겐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지금 수치로는, 넘어지기만 해도 죽을 수 있으니 당장 택시를 타고 조심조심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하셨다. 무슨 정신으로 진료실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현실감이 없어 눈물도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필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병원 전화를 빌렸다. 엄마의 “여보세요?”를 듣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말이 눈물에 막혀서인지 나오지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엄마는 “왜, 무슨 일이야?”라고 재차 물으셨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뚫고 거의 악을 쓰듯 울며 외쳤다. ...나 백혈병이래!!!”



엄마에게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오라는 말을 겨우 전한 뒤 혈액종양내과를 빠져나왔다. 병원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보조배터리를 사고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고향 인천에 잠시 내려가 있던 남자친구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는 바로 응급실로 가겠다고 했다.



택시를 타는 내내 창문을 내린 채 소리 없이 울었다. 목적지가 병원이어서 그런지 택시 기사님도 아무런 질문 없이 운전만 하셨다. 죽을병에 걸렸는데 택시를 타고 씩씩하게 혼자 응급실로 향하는 상황이 어이없어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우는 내 모습이 마치 드라마 속 비련의 여자 주인공 같다는 실없는 생각도 했다. 여자 주인공들이 많이 걸렸던 병이라 그런가.



현실적인 생각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험은? 학교는? 결혼은?’, ‘암에 걸리면 치료비 때문에 집안 자체가 망가진다는 데 괜찮나? 부모님이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사람이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새삼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은 묘하게도 장례식장 바로 옆에 있었다. ‘죽음’이라는 게 더욱 실감 나서 무서워졌다.



내 삶은 이때를 기점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