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으로

삶,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하지만 사랑이라는 변수

by 성원

HONNE - lalala that's how it goes

마음이 따스해지는 노래



택시 안에서 울다 겨우 진정이 될 때쯤 응급실에 도착했다. 처음 마주한 응급실은 너무 고요해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드라마를 보면 응급실 앞은 늘 삐뽀삐뽀 무시무시한 경고음을 내는 응급차로 정신이 없었는데, 실제 응급실 입구는 바로 옆 장례식장보다도 더 고요했다. 쭈뼛쭈뼛 응급실 앞 직원분께 다가가 진료의뢰서를 내밀었다. 직원분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기계처럼 아무렇지 않게 안내 사항을 전달했고, 의료진 파업으로 인해 대기가 많이 밀려 있으니 삼십 분 정도 기다려야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응급실 앞 바위에서 그저 멍하니 기다렸다.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너무나 평온했던 주변 환경 때문인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삼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응급실에 입장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들어가서 바로 문진을 받았다. 진료의뢰서를 또 다시 보여드리고, 맥박 등을 포함해 바이털(vital) 수치를 쟀다. 검사를 하면서도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피부에 반점이 생겼을 뿐인데, 수험생이라 조금 피곤할 뿐인데. 세상이 나를 두고 몰래카메라를 찍는 중이라고, 내심 응급실에서 거절당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환자분, 아무 이상 없으신데 왜 오신 거죠?’와 같은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이털 기계는 다른 말을 했다. 70-80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할 맥박이, 무려 180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멀쩡하게 숨 쉬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인상을 쓰신 채 물으셨다.

“환자분, 숨은 쉴 수 있어요?”





나는 졸지에 응급실 내에서도 “위급한 환자”가 되었다. 맥박이 180이었던 덕에 금세 침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검사는 계속되었다. 엑스레이도 찍고, 피를 뽑기 위해 팔이 또 주사에 찔려야 했다. 수치가 워낙 엉망이라 신속하게 혈소판, 적혈구 등 수혈도 받았다. 모든 일이 신속하고도 순식간에 일어나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이 얼추 마무리되고 드디어 혼자 침상에 눕게 되었다. 내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 난 걸까. 맥박이 180이었는데, 왜 나는 느끼지 못했을까. 내가 그리도 무던했던가? 아니면 빠른 심장박동이 일상이 될 정도로 심리적 압박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걸까? 내가 이 몸의 주인이면서 너무 무책임했던 것 같아 스스로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기다리니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급성백혈병이 확실하고요, 어떤 종류인지는 골수검사를 해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치료 기간은 대략 1년 정도 걸리며 완치율은 40%에서 60% 사이입니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버거운 말들을 무미건조하게 뱉어내셨다. 그리곤 더한 말씀도 하셨다.

“아, 항암을 하면 높은 확률로 불임이 되니 미리 난자 채취를 할 수는 있으나, 치료가 위급하기에 권장해 드리진 않습니다.”

워낙 아기를 좋아하고 며칠 전만 해도 남자친구와 장난스레 2세에 관한 얘기까지 나누었는데, 나 백성원의 설정값이 재부팅되는 느낌이었다. 바뀌어버린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혼자 끙끙댔다.




응급실은 온갖 기계음과 환자들의 신음으로 시끄러웠다. 그 소리가 ‘그래, 나만 아픈 건 아니구나,’ 말해주는 것 같아 이기적인 줄 알지만, 위안감을 받았다. 소음을 배경음악 삼으며 얼마 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을까. 응급실에 도착했다는 남자친구의 연락이 왔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서로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나는 남자친구가 우는 모습이 마음이 아파 더 울었다. 내 남자친구는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5년 가까이를 만나면서도 절대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내가 늘 장난삼아 ‘널 울려보는 게 소원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우는 모습은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만 수반될 뿐이었다. 울리고 싶었다고 내뱉은 말을 후회하며 다시 주워 담고 싶을 정도로.


고통 다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암에 걸린 내가, 나 좋자고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남자친구를 감히 붙잡아둬도 되는 걸까. 이제 나는 임신도 할 수 없는 몸인데. 그래서 울먹이면서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떠나도 좋다고, 다 이해한다고. 남자친구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면서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떨리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난 널 믿어. 같이 잘 이겨내 보자.”


눈치 없는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눈물. 내 생애 최고로 눈물을 많이 흘린 시간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수능에서 망했을 때보다도 더. 재수학원에서 처음 만나 5년 넘게 큰 싸움 없이 지내며 결혼을 바라보고 만나던 남자친구, 남자친구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친구의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무렵이었다. 삶이 당연하지 않듯 관계도 당연하지 않은 건데. 아프고 나서야 또 당연한 것은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당연하지 않은 우리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매개로 당연한 것으로 바꾸어주었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인 마법 같은 거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그 말 자체로, 응급실에 온 이후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다.





자정이 다 되어 부모님과 동생이 도착했다. 저 먼 마산에서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붙들고 내리 7시간을 달려오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여서 응급실 보호자는 한 명밖에 있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태 같이 보호자로 있어 주던 남자친구가 나가고 어머니가 새로운 보호자로서 응급실에 들어오셨다. 엄마의 두꺼운 뿔테안경 뒤로 벌게진 엄마의 눈이 보였다. 엄마를 본 순간 나는 비로소 아기 때로 돌아간 듯 마음 편히 소리내어 울었다. 그렇게 엄마 품에 안겨 울어본 게 얼마 만인지. 울음은 멈추지 않았지만, 엄마의 품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엄마 나 완치 확률이 절반밖에 안 된대.”

시간이 지나 울음이 멎은 뒤, 엄마에게 의사 선생님이 내게 해 준 말을 전했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또 한 번 확인 사살을 해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엄마는, 자기가 꼭 나를 살려주겠다고 했다. 극도로 이성적인 나였지만, 그 말이 너무 든든해서 살려주겠다는 엄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삶이란 당연한 게 아니지만, 엄마와 아빠, 가족의 사랑이 더해진다면 영생까지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9월 4일, 나는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잔인한 사실을 직면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의 힘"으로 당연하지 않음이 다시 당연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혼자 사느라, 고시 생활에 몰두하느라 잊고 있었던 사랑의 힘.


9월 4일, 좌절의 늪에 빠져 죽어가던 나를 살린 사람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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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성모병원 응급실서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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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