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을 매기는 일은 어렵다. 특히 디자인에 관한 발표에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매겨야 하고, 그 결과는 최대한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 공정할 수는 없다. 공정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공정해 보여야 한다. 숫자가 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숫자를 신뢰한다. “아주 빠르다”라는 말보다 “시속 100km”라는 표현을 더 믿는다. 우리는 점점 숫자가 만들어내는 신호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시계가 5시를 가리키면 덜 잔 것 같고, 10시를 가리키면 더 잔 것처럼 느낀다. 만약 시계가 멈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곧바로 혼란을 느낀다. 그만큼 숫자는 민감하고 강력한 기준이 된다.
그래서 그냥 “잘했다, 못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점수를 매긴다. 80점, 95점처럼. 하지만 이 점수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결국 카테고리를 나누고, 각 항목에 점수를 부여하게 된다. 창의성 20점, 설득력 20점, 발표력 20점 기타 등등.
그러나 사실은, 보고 느낀 인상이 더 정확하다. 내가 느낀대로, 감정이 일어난 대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판단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세부 항목을 나누고 점수를 매기는 이유는,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공정함’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학생들의 발표는 항상 진지하다. 최소 몇 시간 이상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순수한 욕망이 느껴진다.
이번 학기도 이렇게 멋지고, 행복하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