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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Sep 17. 2020

2012년 온라인에 연재한 '한국인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의 마지막 12번째 내용

다시는 후속 편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

나는 2003년에 '한국인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클럽에 글을 게재했었다. 그 당시 나는 어렵게 이어오던 해외 사업을 정리하고 많이 괴로웠던 시절이었다. 나의 해외진출 계획이 실패한 이유와 한국인 디자이너로써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글로벌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하여, 미래에 나와 같은 도전을 하게 될 디자이너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연재하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1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같은 제목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제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두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나는 패션 디자인을 너무 사랑하고, 내가 잘할 줄 알고, 그래서 잘된 디자인을 보면 즐겁다. 패션에는 여러 가지 전문 분야가 있고 모두가 잘 어우러져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이 패션의 전부인 것처럼 항상 얘기 해왔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나의 기준으로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다. 디자인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람의 인성에 대하여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바다에 나가 참치를 잡을 줄 아는 어부와 그렇지 못한 사람처럼,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두 부류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부탁을 하고 싶다. 

먼저 디자인을 아는 사람, 이 부류는 직접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를 말한다. 디자이너는 진짜 디자인을 하길 바란다. 디자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를 도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형태 이상의 무언가를 일반인들에게 제안해야 하는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디자인을 하지 않는가? 왜 다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기다리는가? 왜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키지도 못하면서 사람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디자이너의 '어설픔'으로 망쳐 놓는가? 우리는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나의 감각을 믿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순수한 노력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호응하는 나름의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자신을 믿고 끝까지 감각을 물고 늘어지길 바란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 이 부류는 패션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 디자이너가 아닌 모든 사람을 말한다. 이분들은 제발, 디자인을 빼고 패션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길 바란다. 전 세계 어떤 훌륭한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을 베껴서 일가를 이뤘나? 세상에 어떤 대형 브랜드가 고유의 콘셉트 없이 대성하였나? 

장사를 잘하면 돈은 벌 수 있다. 장사를 할 수 있는 품목은 많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무엇을 팔던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 뭘 팔던 돈만 많이 벌면 '장사'의 이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옛날 선인들은 장사하는 사람을 '장사치'라 부르며 천민 취급을 했던 것 같다. '사업자'가 '장사치'가 아니라 사회의 존경을 받고, 누군가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파느냐'가 중요하다. 이 '무엇'은 디자인된 상품이다. 그럼 무엇에 집중하여야 하겠는가? 디자인이 좋다고 꼭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잘 팔리도록 영업활동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잘 파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 상품이 없다? 무언가 팔긴 하는데 디자인이 없다. 만일 디자인 없이도 잘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당신은 그냥 '장사치'다. '장사치'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된 상품을 팔아야 한다. 디자인을 모르는 모든 사람은 제발 디자인에 집중하라!

이제 '한국인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의 연재를 마치면서 10년 후를 기약하지 않겠다. 다시는 이런 제목의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삼성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자사만의 기술과 고유의 스타일을 창조하고 개발하기보다는 애플의 기술, 사용자 환경 그리고 창조적인 스타일을 베끼는 것을 선택했다 - 2011년 애플 고소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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