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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라는 직업을 갖다
by Nomadic Kim Oct 29. 2018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전율이 일 만큼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 적이 언제였을까? 결혼,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성공적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했을 때,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연봉을 받을 때, 승진할 때, 해외취업에 성공해서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지켜주는 회사에 입사해 꿈에 그리던 회사생활을 할 때, 해외출장이 많은 회사에서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영업하고 성과를 낼 때. 그 어떤 행복했었던 순간에도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해서 보내는 이상신호가 느껴졌다. 



‘이게 내가 꿈꾸던 삶인가?’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주변에 조금 더 무감각해질수록 직장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사의 잔소리, 불성실한 부하직원들, 목을 옥죄어오는 실적, 승진을 위한 경쟁, 동기들과의 말다툼 등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을 차단하는 절대적인 방법은 없고 나를 피곤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기 위해서 조금은 한 발짝 뒤에서 관망하여 적절한 시기에 나서서 일을 하는 것, 즉 감정을 잘 컨트롤해서 남들과 트러블 만들지 않되 적절한 시기가 되면 일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직장생활을 편하게 하는 길이고 인정받는 길이며 안정적이고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나는 눈을 가리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직장은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를 중시하며 인간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직장 그 자체는 매우 냉정했다. 회사는 생존해야 했고 번영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 미래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인력들을 냉정하게 판단하며 회사의 계획에 부합하지 않는 직원들은 해고하며 새로운 직원을 보충하는 사이클을 유지하며 계속 경쟁력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지난 어느날, 당시 근무하던 사업본부의 차/부장급 20%이상이 그런 이유로 해고를 당하게 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내 사수도 있었다. 17년을 회사에 충성하고 단 한순간도 이런 순간이 자신에게 닥칠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그의 취중진담이 다시 한번 내 마음에 박혔다.



주변 어른들이 말하던 성공, ‘좋은 직장 취업 그리고 쉰내 날 때까지 그 직장에서 버티는 것’을 너무나 혐오해 치기 어렸던 시절 다르게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어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것이 냉정하게 이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때 발생한 이 일은 내 마음을 뒤흔들었고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이전과 같은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너가 꿈꾸던 삶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은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었다. 중간관리자로 승진하고 해외 지사 파견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고 충성을 다하고 팀장으로서 성과를 내고 회사생활동안 온 힘을 다해 만든 연줄로 임원으로의 승진, 혹시 이런 성공의 길에서 벗어나면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의 나이에 자영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든 다른 작은 회사로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조금 더 길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직장에서 그럭저럭 성공하는 삶인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살아간다 해도 은퇴 이후의 삶이 안정적일 거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중산층의 삶만 살게 되도 감사하게 살아야 하는 인생. 그게 직장인으로서 내가 걸어가야 될 길이었다.



이제 30대 후반, 조금 있으면 모든 기회의 문이 닫히고 회사에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처럼 보이는 순간 내 앞에 다시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게 너가 꿈꾸던 삶인가?’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패했을 때 내 인생은?




제조업 영업밖에 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다른 일을 한다면 무얼 해야 하나? 대리점? 자영업? 프랜차이즈? 그것도 아니면 신박한 아이디어 하나 내서 스타트업을 해봐야 되나? 명확한 사실은 성공확률은 매우 낮았으며 실패하면 지금보다 훨씬 악조건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와이프의 실망한 눈빛과 아이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아른거린다.



그러나 남들이 말하는 직장에서의 성공도 성공이 아닌 실패에 가까운 인생처럼 보였다.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 그럼에도 이거 한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이 길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게 현재의 내 삶에 최선인가’라는 물음에도 아니라고 명확하게 답할 수 있었다. 나는 단지 틀린 길을 가고 있었던 거고 이제 바로 잡는 방법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었다. 매달 들어오는 돈으로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생활비를 보태고 때에 따라서는 조금씩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도 가고 그런 소소한 재미를 찾기 위해 앞으로 올 절망적인 미래를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 진실이었다. 지금 당장 나는 ‘변해야’하고 행동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동적인 인생으로 남들의 손에 내 운명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은 정리되었지만 방법은 정리가 전혀 안됐다. 경험하지 않고 방법이 생길리 만무했다. 따라서 경험을 위해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고 그 길로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디지털 마케팅을 주업으로 하는 외국계의 작은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사표수리 이후 내 주변은 세상이 무너지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은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미래를 포기했다며 내 결정을 돌리길 바라셨고 아내는 벌써부터 생활비 걱정에 살림 걱정으로 매일 한숨을 쉬고 장모님 장인어른은 별 말씀은 없으셔도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계셨다.



그렇다고 내 결정이 잘못되었을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강한 책임감과 전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내 결정에 전율을 느낀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강한 희열 그리고 떨림. 내가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이 감정만은 진짜였다. 최소한 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절망속에서 도전이 준 선물 그리고 다시 도전



바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유는 ‘두려움’ 때문 이었다. 여전히 회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게 너무 두려웠고 지금 보다는 어떤 기술을 배우고 난 후 그리고 아이템을 명확히 선정한 이후가 좋겠다고 판단을 했기에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디지털 마케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전 회사에서 디지털 마케팅이 상품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을 경험했고 디지털 광고가 전통적 광고와는 달리 기술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향후 창업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초연결관계로 진입한 사회에서 SNS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게임 및 이커머스 다운로드를 주업으로 하던 당시의 회사는 1년 반 만에 100억에 가까운 매출액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전문인력의 부족은 디지털 광고에 대해 제반 지식이 없던 나마저 기술을 배우고 실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았으며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광고 및 마케팅에 대한 연구 그리고 끊임없는 집행을 통한 최적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은 ‘바람앞의 촛불과 같은’운명이다. 바람의 방향 그리고 세기에 따라 언제든지 꺼지고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즐겁게 배우고 있었으며 회사는 날로 성장하는 듯 보였으나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극심한 경쟁으로 한번 기울어진 사세는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경험이 일천한 직원들끼리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일에 매진을 해도 매일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어느날 창업자와의 간단한 점심식사 시간에 간단하지 않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전 회사에서 경험했던 ‘해고’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기업보다 비용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해야 했고 이미 기울어진 사세를 되돌리기 위해 필요 없게 된 인력들을 해고하는 작업들을 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보였다. 부하직원들은 물론이고 나의 앞날 조차 불투명해졌다. 목표는 70~80% 인력감축.


다시 암흑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깊고 긴 터널의 끝에서 실날 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기 위해 밤낮없이 살아왔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독했고 남들이 말했던 부인하고 싶었던 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 운명’, 다시 마주한 이전 보다 더 독한 현실 앞에 나는 다시 있던 자리에 돌아가기 위한 좋은 변명거리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전을 해봤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패를 했으며 이제 원래 있던 자리에 아무일 없이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변명을 잘 다듬어 정당화 시키면 되는 것 처럼 보였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정’처럼 보이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나는 다시 내가 생각해 놓은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그간 회사에서 배워온 기술들을 바탕으로 만들어 본 그리고 발전시켜온 웹사이트가 괜찮은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희망없는 삶을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정해진 불운한 미래보단 정해지지 않은 희미하지만 희망이 보이는 삶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짦은 시간안에 여러 번의 실패 그리고 작은 성공들을 통해 이제 가족을 부양할 만큼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며 직원들을 고용할 만큼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금액적인 부분보다 더 기쁜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훨씬 더 발전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전에는 희미하고 불행하게 보였던 미래를 이제는 더 선명하고 밝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화앞에 안정을 택하고 도전과 실행대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매우 제한적이고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지금 가슴속에 ‘용기’와 ‘변화’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면 이제 생각만하지 말고 실행해야 한다. 다가올 실패도 성공의 한 부분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I believe that one of life’s greatest  risks is never daring to risk.”
조금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가장 위험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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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마케터
20대도 30대도 아닌 40대의 나이에 두 아이 아빠이자 가장이 '디지털 노마드' 로 해외에서 살게된 이유와 생존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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