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밤의 지배자다.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수리부엉이는 최상위 포식자다.
수리부엉이는 하늘을 날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고요한 어둠을 찢고 튀어나와 목덜미를 잡아챈다. 발톱이 날카롭고 발목이 강해서 공격받은 어른 손이 관통된 기록이 있다. 심지어 60kg이 넘는 성장기 늑대를 사냥한 기록도 있다.
어둠 속에서 날 보는 눈이 느껴진다.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본능이 다급히 종을 울리지만 어디로 숨어야할지조차 알 수 없다.
불현듯 등 뒤로 서늘한 기척을 느낀다. 그 순간 차가운 발톱이 어둠을 찢고나와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서 위로 끌고 올라간다. 바닥에서 발이 뜨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지상과 멀어진다.
수리부엉이에게 사냥당하는 먹잇감의 기분을 상상해보면 공포 그 자체다. 소름끼치는 호러가 따로 없다. 호랑이나 치타에게 쫓기는 것보다도 훨씬 더 무서울 것 같다.
문득 생각해보면 진정 무섭고 치명적인 것들은 모두 다 소리 없이 온다.
집요하게, 근면히 자라나는 암세포. 검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우울함.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의 축적. 무턱대고 낭비해버린 시간의 자각과 그 황당함. 어떤 맹신.
그런 것들은 어둠 속에서 오래 나를 지켜보다가, 나의 움직임을 따라 크게 모가지를 돌리며 집요히 추적하다가, 내가 약할 때 문득 튀어나와서 차가운 발톱으로 덥석 나를 움켜쥔다.
두려운 것들은 다 그렇게 고요히 움직인다. 어쩌면 점잖다고도 말할 수 있을만큼. 여지없이 신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