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전엔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다. 좀더 정확히는 '학생이 학교에 나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그런 공부', 를 해보지 못했다.
고졸학력도 실은 거저 얻은 거였다. 응당 퇴학이어야 마땅하게 학교에 안 나갔으나, 자기 반에서 퇴학생이 나오는 일을 막아야 했던 담임들은 서류를 조작해서라도 기어이 나를 졸업시켰다.
나름의 학습수단은 있었다.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과 생활에 스스로 필요한 것들은 이런저런 알바를 하면서 배웠다.
한 인간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은 게임, 음악, 책, 영화를 통해 구성되었다. 혼자서 막힐 때면 늘 그 어떤 컨텐츠가 해답을 찾아줬다.
그 중에 가장 강렬했던 건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들이다. 에밀 쿠스트리차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집시의 시간>을 보게 된 날 영화에 홀렸고,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결혼식 장면을 보고 언젠가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처음 결심하게 됐다.
만약 에밀의 영화들과 만나지 못하고 자랐다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것 같다.
<집시의 시간>을 기억한다. 그 어리둥절하고 막막한, 그러나 있는 힘껏 벅차오르는 충만함이 생생하다.
채널을 돌리다 EBS에서 이 영화와 마주치곤 알 수 없는 이유로 홀려버렸다. 의식이 가늘게 휘어져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몰입이었다.
보면서도 또 보고나서도 그게 뭔지 모른 채 다만 충격을 받아 얼떨떨한 정신으로 그 새벽에 밖에 나가 4시간을 걸었다. 흥분해서 걷는 내내 손이 덜덜 떨리던 기억이 난다.
그땐 이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영상들과 이미지들이 너무 강렬해서, 뭐가 속에서 자꾸 차올라서 안절부절 못했다.
숨이 가쁘게 심장이 뛰고 피가 돌아서 뭐라도 해야 될 것만 같았다. 근데 그땐 할 줄 아는 게 게임 말곤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밖에 나가 진정이 될 때까지 걸었다.
목적지도 없이 한참을 걷고 나서 대로변의 건물 계단에 또 한참을 주저앉아있었다. 머릿속 가득히 충격이 차서 생각도 구성되지 못했다. 머릿속엔 '대체 이 감정이 뭐지?' 하는 의문만 멍하니 맴돌았다.
그때부터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영화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살게 만들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그때를 떠올리는 일 만으로도 아직까지도 심장이 빨리 뛰는데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좀더 살아보면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