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묘한 곳이다. 만일 내가 작가라면 글이 막힐 때 공항에 갈 것이다.
공항 커피숍 창가에 앉아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들의 표정을 바라본다. 어쩐지 조금 차분해보이는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 저마다의 사색이 깃들어 있다.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표정들은 몇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탁 트인 공항에 들어서면 일순 마음도 트인다. 티켓 펀칭을 할 때 생기는 작은 동그라미처럼 막혀있던 나의 어딘가에도 작은 트임이 생기는 것 같다. 이 공간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하다. 넓은 무채색 안에서 각자 다른 것들이 서로 간섭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제 출발한다. 그때 누군가 돌아온다. 입장과 퇴장이 바로 곁인 게이트에선 재회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도 나란하다.
헐레벌떡 누가 뛰어온다. 맞은편에선 하릴없이 저쪽에서 무얼 팔고 있나 가보며 시간을 죽인다. 누군가를 찾는 다급한 안내방송과 벽면에 충전기를 꽂아놓고 독서하는 사람의 책 넘기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긴장과 이완이 나란히 흐르며 결국엔 서로 무심하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잠시 머무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아마도 공항 같을 것이다. 마치 거대한 띄어쓰기 같은 이쪽과 저쪽 사이의 여백. 건너오고 건너가는 유예의 공간에선 서로에게 무심할 수 있다. 그래서 한가하고 평화롭다.
실은 별 관심도 없는 유럽의 축구경기가 틀어진 라운지에 앉아 사람들은 오가는 다른 사람들을 한가로이 바라본다. 한 층 위 일단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에 앉은 사람들도 밥을 대충 먹고는 별 생각 없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각기 다른 피부색, 각기 다른 사연, 각기 다른 출발지와 목적지의 사람들 모두가 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그저 차례를 기다린다. 목적성도 재촉도 지금은 유예되어 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국의 냄새가 밴 짐들이 둥글게 들어선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거기 묻어있다. 빛이 드는 넓은 창 밖으로 비행기 가득 새로운 사연들이 뜨고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