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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Jan 30. 2021

대항민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경고한다. 이 글을 읽으면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당신은 이제라도 읽기를 멈춰야 한다. 끝까지 읽고 나면 "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란 대사와 함께 한 발의 총알이 날아와 당신의 머리에 박힐 것이다. 꽁무니에 이란 글자가 새겨진 총알이.


... 알고 나니 너무나 신경 쓰인다. 길을 걷다 을 만나게 되면 눈을 뗄 수 없다. 은 늘 나에게로 온다. 아니, 솔직히 이젠 내가 먼저 을 찾는다. 병원이 모인 건물만 보면 그곳에 이 있는지 없는지 위아래를 재빨리 훑는다. 아 저기 있다, 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마저 들곤 한다.


호기심이 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느 날 서교동을 거닐다 병원 간판을 보고 그만 의 용례에 관해 궁금해버렸다. 우리 모두 의미하는 바가 무언지 능히 알고 있는데 왜 속 시원히 말하지 않는 걸까. 왜 '클리닉'이라거나 '병원' 혹은 '학문외과' 같이 비겁한 표현을 쓰는 걸까.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 말을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다. 의료법 42조 때문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99개 전문분야 외 모든 병원은 상호에 특정 신체부위를 포함할 수 없었다. 전국의 많고 많은 그 어눌한 병원 간판들은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말을 할 수 없음으로 인해 생겨난 거였다. '탈모드' '목커리' 같은 이름을 쓰는 병원도 다 마찬가지의 사정이다.


사실 그 누구보다 속 시원하고 싶은 사람은 그 간판 아래서 진료를 보는 의사들이다. 마치 일제 탄압에 맞서 행간으로 의미를 전달하던 열사처럼, 그들은 어떻게든 뜻을 알리고자 창의력을 발휘한다. 학문이라 쓰고 학의 ㄱ을 동그랗게 말아가면서까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말 못 하는 답답함이 오죽할까. 아마 그들 중 누군가는 한밤중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어두운 밤 차를 몰아 캄캄한 한강을 향해 시원하게 그 말을 갈겼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규제가 생긴 이유는 이렇다. 특정 부위나 질환을 병원 이름에 넣으면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환자가 현혹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전문의가 아닌데도 전문의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답답해서 못 참겠는 의사들은 규제를 풀고자 했다. 법의 취지가 그렇다면 전문의가 개업한 경우에라도 속 시원할 수 있게 해달라 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속 시원하고 싶은 쪽과 계속 참으라는 쪽이 첨예하게 싸웠다. 한 마디로 밥그릇 싸움이다. 규제를 풀면 큰 병원이 불리하니까 대한의사협회 같은 곳에서 끊임없이 저지해왔다. "이르면 오는 땡땡일부터 사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라는 기사가 올라오면 한 달 뒤 "협회 반대로 무산됐다"는 기사가 올라오길 반복하는 일이 무려 2008년부터 이어져왔다.


그러다 마침내, 작년 말부터 규제가 풀렸다. 규제가 집중된 기술 및 산업 10개 분야에 대한 규제완화정책이라는 시대 흐름에 우리의 도 올라탄 것이다. 이제 전문의가 개업하면 병원 이름에 전문과목 신체명을 표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미 개업한 전국의 수많은 병원들을 다 어찌 할 것인가. 그들 모두 간판을 바꿔야 하나? 상호명도 바꿔야 한단 말인가? 간판가게와 법무사무소만 신나는 일이다. 돈 주고 애써 검색최적화 해놓은 뿌숑빠숑 블로그 글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마케팅대행사에게 말하면 그들은 필시 원장님 그런 식의 대량 수정은 저품질 우려가 있으셔서요, 라고 답할 것이다.


평소 을 유심히 본 사람으로서, 나도 곰곰 생각해봤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은 아주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왔다. 2008년부터 싸웠으면 항과 함께 해온지도 최소 13년이다. 이 정도면 그냥 인정해주자. 그 긴 세월 동안 은 누가 봐도 할 만큼 했다. 을 서자 취급할 게 아니라 우리 받아들이자. 을 포용하자.


앞으로 개업할 전문의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의 의지를 이어받아 다음 중 하나의 이름을 사용하길 바란다.


민국

의시대

나의 건강 생활

정말 좋아니다

당신을 응원니다

네가 있어 복해

걱정지마

착오

새로운방

야간진료 24시병원 시대기


아니면 그냥 명료하게


간혹 이란 말을 놔두고 '창문외과' 같은 표현을 쓰는 이단이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권장하지 않는다. 이야말로 이 분야의 핵(!)이기 때문이다. 이 강렬한 한 글자의 함축성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가슴에... 아니 엉덩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은 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해왔다.


병원 간판에서 영 어색하고(?) 유독 도드라지고(!) 조금 돌출되어 있는(...) 한 글자. 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타포다. 은 이 기관이 건강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 증상과 엄습할 고통을 함축한다. 가족도 회사도 혹은 연인도, 그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할 오롯한 고독이  안에 웅크리고 있다. . 그것은 단말마의 비명과 같은 말이다.


이 분야에 연관된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보다 더 깊이 있게 함축할 수 있는 한 글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마치 오므린 입모양처럼 동그란 말.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이 세상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나씩 주어지는 것. 나에게도 어김없이 있는 것. 법 따위가 다 무슨 상관인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자. . 작고 소중해. 의사들은 이제 와서 을 배신하지 말자. 오래도록 의 의지를 이어가자. 그리고 그 편이 싸게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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