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chun Kim Oct 26. 2020

한국인 대부분 모르는 어른의 자격… '이것' 갖춰야

마침내 초보운전을 뗐다. 운전을 배우고 10개월 만에, '혹시 모르니까 이달까지만'을 몇 번 반복한 끝에 스티커를 떼었다. 스스로에게 준 마지막 퀘스트 장소는 북악스카이웨이였다. 구불구불 난코스로 유명한 이 길을 아주 작은 문제도 없이 다녀오면 초보를 뗄 자격이 있으리라.


결과는? 싱거운 성공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곤 바로 스티커부터 뗐다. 글자가 붙어있던 주위에 부옇게 먼지가 내려있었다. 슥 손으로 쓸자 '초보'라는 단어가 지워졌다.



기분 좋다. 뭐가 됐든 나의 성숙을 보는 건 이렇게 기쁜 일이다. 세상사 다 이렇게 '초보'를 졸업하는 명확한 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아직도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면에서 초보다. 잘하는 것 몇 가지를 가지고 어떻게 겨우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일에 아직 서툴다.


어릴 땐 어른이 되면 그때부터 어른일 줄 알았다. 좀 겪어보고 그게 그렇게 뿅 하고 되는 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됐다. 어른이라는 건 어떤 성숙의 결정 단계가 아니라 정신이 자라기 시작하는 분기점인 것 같다. 우리는 어른이 되는 그제야 이제 막 어른을 시작하게 된다. 삶의 무언가에 관해 초보를 떼는 순간은 그로부터 한참, 한참 뒤의 일이다.



내 질문은 언제나 같았다. 대체 우리는 언제 '초보어른'을 뗄 수 있는가. 언제쯤 나는 성숙한 내가 되는 걸까. 늘 막막한 질문이었다. 어른은 어떻게 살면 좋을지 물어볼 진짜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에야 그 언제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초보어른'을 떼는 시기는, 아마도 함께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보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정말 어른이 되면 먼저 슬픔을 알게 된다. 멀어 닿을 수 없는 꿈이,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우리 하루들이, 무수한 저마다의 사연들이, 그게 다 슬픔이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약해져서가 아니다. 호르몬 때문도 아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슬픔이었다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이젠 나의 엄마가, 아침방송에 나온 중년배우가  그렇게 눈물이 많았는지 조금   같다.


누군가의 상처를 알아채는 사람. 그 슬픔에 관해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초보가 아니다. 그게 어른이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기와 더불어 사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