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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Jan 16. 2022

전교에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그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발을 헛디뎌 자빠질 뻔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이란 바로 그런 거였다.


불행은 내가 100만원을 받게  것이었다. 운동장 가득 줄지어   많은 초등학생, 그중   사람.  이름이 불렸을  나는 무언가 실수가 있구나 생각했다. 성적우수장학금이라니. 구구단 8단도  외우고 졸업하는 내가 받을 것이 아니었다.


어리둥절 머뭇거려봤자 결국 떠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교단 위 교장선생님 손에 들린 저 상장이 이름 불린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저걸 내가 넘겨받는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이 어색하고 죄스런 침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실은 이미 다 예정되어 있었다.


교단으로 오르는 짧은 철계단은 오전에 내린 비로 미끄러웠다. 거기에 나의 행운이 있었다. 미끄덩 한쪽 발이 쑥 빠지며 그만 전교생 앞에서 볼썽사납게 넘어질 뻔한 것이다. 일순 침묵이 깨지고 초등학생들이 깔깔깔 웃어댔다. 나는 창피해서 멋쩍게 웃으며 과장되게 빠른 걸음으로 교장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고는 축사와 함께 상을 건넸다.


"위 학생은 평소 행실이 바르며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학우들의 귀감이 되어..."


우리반과 양 옆반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나도 알고 있어, 나도 같은 맘이야. 내 성적은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실수에 의해 내가 지금 이 상을 받으러 나오게 된 것이고, 그러므로 일단 내가 받고 나서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 전달해주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장을 건네받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나와 함께 이름이 불린 두 번째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 어린 마음으로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아... 가난한 애들한테 주는 거구나. 처음부터 성적이랑은 상관이 없었구나. 전교에서 가장 가난한 애가 나랑 쟤였구나. 쟤랑 나 중에선 누가 더 가난한 집 애일까.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두 번째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저 죄스럽고 위축된 가난한 초등학생의 눈빛. 그게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는 내내 엄마는 내가 넘어질 뻔한 순간을 반복해서 묘사했다. 엄마도 교단 위의 나처럼 과장되고 다급한 몸짓이었다. 운동장의 그 초등학생들처럼 깔깔깔, 삼촌도 크게 웃고 살짝 내 볼을 꼬집어가면서 나를 놀렸다. 그로 인해서 나는 아까 본 두 번째의 눈빛을 잊고 내가 정말 넘어질 뻔해서, 그걸 보고 애들이 웃어서 창피함을 느끼는 줄 알게 됐다.


그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초등학생을 놀릴 거리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날 내가 자빠질 뻔해서 정말 다행이다. 어린 마음에 묻은 수치심과 한없는 위축의 실체를 숨길 수 있었다. 두 번째의 그 잊을 수 없는 눈빛도, 그 눈빛에 비친 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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