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스승의날이면 사람들이 자기 '스승'을 찾아 인사하고 감사를 전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모두에게 그런 '스승'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스승이라는 말을 적고 난 지금도, 나는 이 단어가 정말 생경해서 소리 내어 발음을 해봤다.
나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 내 기억에 초중고 선생들은 밥벌이하는 의무교육기관 공무원이다. 안 좋은 기억이라면 잔뜩 있다. 급식비 3만원을 못 내는 중학생을, 가난하여 급식비 3만원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엎드리게 해 하키채로 허벅지를 팬다던지. 혹은 형편이 좋지 못한 걸 다 알면서 표어공모전 상금 50만원을 슬쩍하는 담임이라던지. 개미새끼 한 마리 가르칠만한 자질이 아니고 그 누구의 가르침이라도 시급한 미성숙들이 나를 거쳐간 선생들이었다.
내가 스승이란 단어의 목적어 자리에 어색함 없이 놓을 수 있는 말은 영화 뿐이다. 나의 스승은 영화였다. 늘. 살다가 막히면 반드시 결정적 영화가 나타나서 결정적인 말을 해줬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런 말을 듣고 엔딩크레딧을 본 후 극장을 나오면 빛이 쏟아져 눈앞이 환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만약 스승의 날에 반드시 누구라도 휴먼을 찾아야 한다면 나는 씨네스트 릴리즈그룹, 그 중에서도 팀 WAF(We Are Family), 그 중에서도 '태름아버지'를 어떻게든 찾아서 정말 감사하다고, 당신의 자막과 노고가 있었기에 내가 살고 있다고, 모자라나마 적법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당신 덕분이라고 감사를 전하고 싶다.
좋은 말을 해준 고마운 영화들이 많다. <인투더와일드> <폭풍속으로> <꿈의 구장>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록키> 그리고 <록키발보아> <프레셔스> <벌새>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밴디트> <시> ...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로부터 힘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런 식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영화를 만났다. <듄>이 건넨 결정적인 말은 우아하고 기품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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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is the mind-killer. Fear is the little-death that brings total obliteration.
I will face my fear. I will permit it to pass over me and through me.
And when it has gone past I will turn the inner eye to see its path.
Where the fear has gone there will be nothing. Only I will remain.
- Dune (written by Frank Herbert)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 듄 (프랭크 허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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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은 두려움에 맞서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내리면 그곳에 살아남은 자가 있다. 살아서 똑바로 선 자는 강한 자다. 어둠을 보고도 이겨낸 자. 아마도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나약한 인물이 하나도 없는 영화는 <듄>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은 강자다. 밤의 침공으로부터, 내면의 두려움으로부터, 모래속 심연 혹은 사막의 허무로부터 맞서 여지껏 살아남은 자들이다. 심지어 작은 들쥐 같은 생명체조차도 강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는 그 맞섬의 순도가 가장 높은 자다. 지속하는 힘은 언제나 용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쓰기 싫어진다. 저 대사를 봤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하고 싶지 않다. 영화의 조명이 항상 어둠에서 시작해 빛으로 빠져나온다는 것도, 정신의 강함이 가장 순도 높은 강함이라는 메타포도, 베네 게서리트든 샤이 훌루드든 던컨 아이다호든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정신의 강함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도 길게 쓰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러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저 말을 한번 더 보자. 저 고결한 문장을 다시 또 읽어보자(번역도 꽤 좋다). 1가구 1족자가 시급한 저 우아한 문장을.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