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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Aug 13. 2022

불경한 생각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망가져버리기를 나는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내 마음 어딘가 음습한 곳에 그런 생각이 버섯처럼 붙어있다. 나의 소중한 이 모든 것들이 아예 다 없어지고 손 쓸 수 없이 망가져버리면, 그래서 나 혼자 외로이 남게 되면, 그때 어쩌면 부정할 수 없는 후련함을 느끼게 될 거라고.


그럼 그나마 남은 한줌마저도 다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나는 맨몸으로 떠날 것이다. 아무 차편이나 얻어타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무인도에 가고 싶다. 거기서 원시 인류처럼 살고 싶다. 겨우겨우 불을 피우고 새를 잡아먹고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들로 엮은 집에서 살고 싶다.


어디든 밖으로 나갈 것이다. 말의 세계로부터 떠날 것이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말을 못 하는 사람인 척 할 것이다. 목적 없이 그때그때 내키는 골목을 떠돌 것이다.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면 아무 일이나 하고서 푼돈을 벌 것이다. 불편에 무던하고 가학적으로 느리게 살 것이다. 날이 더우면 뼈가 흐물해지도록 덥고 추우면 뼈가 시리게 추울 것이다.


실은 그런 삶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조금 해방감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줄곧 그래왔다. 스무살 무렵 번화가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정전이 되어 떠들썩하던 번화가가 일순간 통째로 꺼진 적이 있다.  압도적인 정적 속에서 나는 남몰래 두근거렸다. 그건 분명 희열이었다. 등장인물이   마트에서 물건을 주워담는 장면이 좋아서 좀비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오래전부터 나는  도시가  꺼지고 자본주의가 폐기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나보다.


떠도는 삶의 의외성도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세월을 살아내면 나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그때의 나는 뭘 두려워할까.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 같은 표정을 짓게 될까.


아무도 모르게 객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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