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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Feb 13. 2023

책방 노마만리의 겨울나기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23.

지난 12월 초에 한국영상자료원 수집팀의 김승경, 이지영 선생님과 함께 3박 4일간 도쿄로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일본 내 영화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한 예비조사 차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출장 기간 동안 도쿄의 필름센터와 조선장학회 등 유관 기관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북한영화 전문가인 메이지가쿠인대학의 몬마 다카시(門馬隆司) 선생, 재일조선인사를 연구하고 있는 정영환 선생 등과 면담하였다. 일정에 있었던 간다의 고서점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시간 관계상 세밀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그나마 도쿄예술대학의 김소연 선생이 통역을 맡아주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12월 11일 몬마 다카시 선생님 연구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도쿄의 지인들을 만나 반가웠다. 대학원을 함께 다닌 후배 가토 치에 가족과 만나 차를 마셨고, 제자 정원석과는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처음으로 다녀온 해외여행이라 그런지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름 만족스러웠다.


일본에 다니러 간 사이 노마만리는 개업 이후 처음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문을 닫았다. 혹한의 날씨가 계속된 것이 주된 이유일테지만 출장의 여파도 있어서 그런지 출장 후 책방에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거기에 12월에는 눈까지 자주 내리면서 애로가 많았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출근하면서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벽에 부딪혀 범퍼가 박살나기도 했다. 결국 1월, 2월 두 달 동안은 수요일 정기휴일에 더해 화요일과 목요일도 쉬기로 했다. 그 사이 출간 예정인 “스탈린그라드거리의 평양책방”의 도록 제작을 시작했다.


책방에 오는 손님이 크게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전기료는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150만 원의 전기료 고지서를 받아 들고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여름철 매일매일 에어컨을 틀 때의 2배였다. 그렇다고 히터를 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 고지되지 않은 이번 달에는 전기료가 더 나온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전기료를 무시하고 히터를 틀어도 날이 너무 추울 때는 크게 따뜻해지지 않은 것은 더욱 문제였다. 손님이라도 북적이면 덜 추울 텐데 큰 건물에 혼자 있으려니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내년에는 주중에는 문을 닫고 주말에만 문을 열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2월이 되니 확실히 날씨가 풀려서 그런지 손님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주중 3일을 쉬니 주중 손님은 확연히 줄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12월 이전의 80% 정도의 매출이 나오는 것 같다.


영화모임 "탐닉", "친절한 금자씨" 상영회(좌) 제주프랑스영화제 고영림 선생님 방문 기념(우)


그나마 겨울철 노마만리를 따뜻하게 만들어 준 것은 매주 금요일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영화감상 모임 “탐닉”이다. 한때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한국영화감독론” 수업을 맡아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박찬욱,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필모순서 대로 보고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때는 학생들이 미리 영화를 보고 오면 수업시간에는 주요한 장면들을 분석하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가는 학생들이 매주 제출하는 영화 리뷰로 대신했는데 그 리뷰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노마만리에서 하고 있는 영화모임 “탐닉”은 그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간단한 인상평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처음 나를 포함해 3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한두 명씩 인원이 늘어 2월 10일에 있었던 “스토커” 상영회에는 기존의 멤버 3명이 빠졌음에도 무려 열한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매주 금요일 심야에 사람들이 모여 영화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노마만리가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활동이다. 나 스스로도 기대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박찬욱 영화 이후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 지금부터 신나는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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