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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Feb 23. 2021

영화와 스포츠

한국영화 이야기 1.

영화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가 움직임까지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 탄생 이후 각종 역사적 사건이나 국가적 행사, 스포츠 경기들까지 필름에 담겨 극장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대표적으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피아>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독일의 유명 여성감독인 레니 리펜슈탈이 만들었으며 1부 "민족의 제전"과  2부 "미의 제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


이 영화를 만든 레니 리펜슈탈은 원래는 무용수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리를 크게 다쳐서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영화배우로 전향하였다. 1930년대 초반 독일에서는 산악영화라는 게 인기가 많았다. 독일의 험난한 산을 정복하는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와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레니 리펜슈탈은 이 산악영화의 여주인공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배우로서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레니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나찌의 선전책임자인 괴벨스의 눈에 띠게 된다. 나찌당은 그녀에게 나찌당 전당대회 기록영화를 찍어달라고 부탁했고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레니 리펜슈탈은 1934년 뉘른베르그에서 열린 나찌당 전당대회의 기록영화 <의지의 승리>를 만들어 낸다. 이 기록영화가 공개되자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36년 개최되는 베를린 올림픽의 공식기록영화를 만들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다. 손기정 선수의 생전 회고를 확인해 보면 자신이 금메달을 딴 그 다음 날 좋은 영상을 찍기 위해 영화촬영반의 요구에 따라 그 코스를 다시 뛰었다고 한다. 손기정 선수에 포커스를 맞춘 화면을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올림피아>는 베를린 올림픽이 끝나고 한참 뒤인 1938년에 영화가 완성되었다. 이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곧이어 이 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최고상인 무솔리니컵을 받았다는 소식까지 알려지게 된다. 이런 소식이 전해질 때 마다 조선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 무렵 일제는 중일전쟁 발발로 인한 외환관리를 이유로 외국영화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그러다보니 일본의 동화상사라는 곳에서 이 영화의 필름을 수입해서 일본에까지 가져 왔으나 수입허가가 나지 않아서 공개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1940년에 가까스로 만주국을 경유해서 이 필름이 조선에도 공개 된다. 당시 서울의 영화배급업자들 사이에는 누가 이 필름을 획득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상영권리금이 얼마인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민관에서 상영될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관람료를 받아서 그게 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레니 리펜슈탈은 두 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그 두 편의 영화가 영화 역사에서 볼 때 기술적으로 또한 미학적으로 중요하게 언급될 정도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두 편이 다 독일 나찌당과 관련된 작품들이다 보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나자 그 뛰어난 재능을 악마를 위해 사용했다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실제 그녀는 전범재판에 불려나갔고, 평생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수감 생활 후 다시 사회로 복귀한 그녀는 영화감독이 아닌 사진작가가 되어 말년까지 뛰어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아프리카 누바족의 모습을 10년 동안이나 카메라에 담아 『누바』라고 하는 사진집을 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믹 제거와 같은 유명한 스타들의 화보도 찍었다. 70대의 나이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여 바다 속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려 100세를 넘겨서까지 현역 작가로 활동한 그녀는 평생 자기 작품은 나찌당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변명을 하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가 극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적은 없지만 운동선수라면 체격이 건장하고 몸도 날렵하고 했기 때문에 운동선수 출신 중에는 영화배우로 활약한 사람도 많았다. 특히 타잔 시리즈에는 미국의 유명 수영스타들이 타잔 역을 맡았고, 미국의 야구스타 베이브 루스나 농구 스타 압둘 자바 같은 선수는 그 스타성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청춘의 십자로> 이원용과 김연실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 출신으로 처음 영화배우가 된 사람은 이주경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야구선수출신으로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1924년에 부산의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 배우 공모를 할 때 응모하여 초창기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영화배우 경력은 아주 짧았고, 영화계에서 이름을 크게 남기진 못했다.      


유명 스타들 중에서 운동배우 경력을 가진 대표적인 경우가 강홍식이다. 유명한 배우인 최민수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일본에서 체육학교를 다녔다고 하며 일본의 수영 스타인 스즈키 덴메이와 교분이 있어 닛카츠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인 <청춘의 십자로>의 주인공을 맡은 이원용 역시 유도선수 출신으로 액션배우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액션영화를 촬영할 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낙법에 능한 실제 유도선수들이 대신 연기했다. 이원용은 스턴트로 시작해서 배우로 크게 성공한 경우이다. 이 외에도 1960년대 최고의 스타이던 신영균은 학생시절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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