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의 매력은 무명의 선수가 쟁쟁한 스타 선수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따내거나 누가 봐도 약체인 팀이 강팀을 차례차례 물리치고 우승을 하는 경우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래서인지 아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실제 스포츠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들이 있다. 800만 관객을 동원한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국가대표>라는 영화도 있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여성핸드볼 국가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도 있다. 이 두 편의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로 올림픽에서 역경을 뚫고 감동을 만들어낸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국가대표>
한국영화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편은 아니었다. 스포츠 경기를 재현해서 영화로 만든다는 게 기본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편이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제대로 된 스포츠영화는 전쟁영화만큼이나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이야기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2000년 이전 시기 스포츠 영화는 들어가는 제작비에 비해 흥행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스포츠 영화로 기억나는 영화들이 몇몇 있다. 이들 영화들은 제작비가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만든 비교적 최근 영화들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두 편의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또 크게 성공한 영화도 많지는 않다.
<친구>를 만들었던 곽경택 감독이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만들었던 <챔피온>은 1984년 미국에서 권투시합 중 사망했던 김득구 선수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거였다. 그리고 <파이란>으로 성공했던 송해성 감독이 후속작으로 만든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으나 흥행에서 큰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다보니 <국가대표>나 <우생순>과 같은 스포츠 영화가 큰 흥행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스포츠 실화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한국영화의 소재로 금기시 되었다.
2000년대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외국영화에 비교하여 기술적으로 뒤처지지 않는 영화거나 아니면 영화의 내용이 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식의 애국주의적인 내러티브가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국가대표팀이 나오는 제목부터 <국가대표>나 <우생순> 같은 올림픽 스토리 들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일부는 흥행에서 성공했다.
그렇다고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야구나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또 아니다. 특히 야구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만들어졌다. 이는 야구가 축구에 비해 마케팅에서 성공한 측면 때문이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구보단 축구를 좋아했다. 이유가 있었다. 야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글러브도 필요하고 방망이도 필요하다. 경기에 필요한 장비들이 있어야 했기에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였다. 그러다 보니 야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 보단 일본인들이 즐겨하던 스포츠였다. 1910년대 이미 만주와 조선, 일본의 실업팀들이 철도 노선을 따라 옮겨 다니며 야구경기를 했다. 이 야구경기는 영화로 촬영되어서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반면 축구는 공만 하나 있으면 가능한 스포츠이다. 공도 살 필요가 없었다.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서 그걸 차면서 즐겼다.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은 야구보다는 축구를 즐겼다. 축구의 수준은 일본을 항상 뛰어넘었지만 야구는 일본인의 수준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 차범근을 비롯해 불세출의 스타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축구는 국제적으로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3S 정책 차원에서 프로 스포츠를 시작할 때 재벌들이 야구보다는 축구를 선호했다. 당시 재벌 중에서 삼성 정도가 야구를 선택했고 현대, 대우, 럭키금성, 포항제철 등 굴지의 기업들이 축구단을 만들었던 걸 보면 알 수 있다.
프로야구가 프로축구 보다 먼저 생기면서 야구의 인기가 축구를 넘어서게 된다. 물론 그 이전 고교야구나 실업야구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축구보다 야구가 먼저 프로스포츠가 되면서 관객들을 선점하는 효과를 낳았다. 뒤늦게 현대나 LG 같은 재벌들이 야구에 뛰어든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야구의 인기가 어마어마 하다 보니 만화가 이현세는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를 출간했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이장호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1986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로 성공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후 한동안 야구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다가 2000년대 들어 야구영화가 하나 둘 나오게 된다.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어린이들에게 꿈”을 이라는 표어로 어린이 팬들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다. 이들 어린이들이 1990년대 성인이 되어 소비의 주체가 된다. 이때까지 영화 쪽에서는 야구와 관련한 컨텐츠가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소비의 주체가 바뀌자 야구와 관련한 컨텐츠들도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야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등장하게 된다. 야구감독이 아닌, 영화감독 김현석이 바로 그 인물이다.
김현석은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하면서부터 야구와 관련한 시나리오들을 쓰기 시작했다. 1998년 그가 시나리오로 쓴 임창정 고소영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는 야구심판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이어서 2002년 초창기 야구 도입 시기를 배경으로 한 <YMCA야구단>으로 감독 데뷔를 하였고, 2007년에는 선동렬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간 한 대학의 스카우터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서게 되는 내용을 담은 <스카우트>를 만들게 된다. 김현석은 세편의 야구영화에 관여한 감독이 된 것이다.
김현석 감독의 작품 외에도 초기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의 무명 선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한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 감독), 프로야구 투수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최동원 선수와 선동렬 선수의 대결을 그린 <퍼펙트 게임>,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스터 고>라는 영화도 만들어져 한때 야구영화가 붐을 일기도 했다.
그외에도 <영광의 9회말>, <투혼>, <배터리>, <글러브>, <파울볼> 등 한국의 야구영화들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야구영화가 주춤한 상태이지만 팬데믹 상황이 끝나고 야구장에 팬들이 모이기 시작할때쯤 야구영화도 다시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